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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Jan 17. 2021

영국 비자

어렵게 손에 넣은 비자 썩힌 이야기

매니저에게 런던 오피스로 이동을 요청한 건 2019년 3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더블린으로 옮긴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내가 관리하는 팀원들도 모두 각 나라로 옮길 계획이었고, 가까이 일하는 유럽 관계자들이 상당수 런던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일적으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에어비앤비 유럽 지사 중 더블린 사무실이 가장 규모가 크지만 당시 기준으로 8-90%가 고객지원팀으로 내 업무와 접점이 많지 않았다.) 고맙게도 매니저는 승인을 해줬고 5월에 relocation을 지원하는 Mobility 팀, HR팀과 논의를 시작했다. 


우선 비자 종류를 결정해야 했다. 신청할 수 있는 비자는 두 종류였다. 흔히 주재원 비자로 알고 있는 Intra-company Transfer visa(Tier 2 ICT)와 영국 정부에서 승인한 기업이 스폰서할 수 있는 Skilled Worker visa(지원 당시에는 Tier 2 General visa). 전자는 말 그대로 기존 임직원을 다른 국가로 발령 보낼 때 필요한 비자고, 후자는 새로 사람을 뽑을 때 신청하는 비자다. Tier 2 ICT는 절차가 간단하고 저렴한 대신 기본 2년만 일할 수 있고 최대 5년까지만 가능하다. Tier 2 General은 자국민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며(최소 두 군데 이상의 구인 사이트에 28일 이상 채용공고를 올려야 하는 등) 비용도 많이 들지만 5년 이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과연 내가 5년이나 있을까 싶었지만, 사람 일은 모르니까 Tier 2 General로 요청했고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과 인력이 더 들어가는데도 지원을 해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아래 자세히..)  

 

2020년 1월에 런던으로 이동하는 걸로 결정하고, 11-12월 두 달은 입사 5주년이 되면 주어지는 Recharge 휴가를 가기로 했기 때문에 10월에 비자 접수를 하라고 조언을 받았다. 비자 업무를 도와주는 파트너사에서 제안한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8월 1일: 구인 사이트에 채용 공고

10월 5일: Certificate of Sponsorship(CoS) 신청

10월 11일: CoS 발급 후 비자센터 예약

10월 말: 비자 신청

*Certificate of Sponsorship은 비자를 지원해줄 수 있도록 영국 정부가 승인한 기업이 영국 정부에 신청해 비자가 필요한 직원에게 발급해주는 정부 후원 보증서다. 


10월 말에 비자 센터에서 비자를 신청하면 여권을 제출해야 하고 비자가 발급돼야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11월 초에 뉴질랜드로 출국해야 하는 입장에서 매우 쫄렸지만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하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2019년 9월 3일, 출장 겸 휴가 차 들렀던 한국에서 더블린으로 돌아온 지 하루만의 일이다. 비자 업무를 도와주는 파트너사에서 영어권 학위 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음? 나 한국에서 대학 나왔는데?"하고 답을 보내자 답변이 없더니 그날 밤 영어권 학위가 없으면 영어능력 증명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이메일이 왔다. 갑자기? 5월부터 비자 준비를 같이 하고 수많은 이메일과 통화를 주고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사항이다. 당장 10월에 비자 신청을 해야 하는데 9월 초에 갑자기 시험을 보라니. 게다가 나는 9월 둘째주 베를린 출장, 셋째주 샌프란 출장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화가 나 밤잠을 설쳤다. 일을 이따위로 하다니. 짐작컨대 내가 더블린에 있으니까 아일랜드에서 학교를 다녔을 거라 마음대로 생각하고 확인도 안 한 것 같은데 해명이나 사과는 전혀 없이 시험 절차만 설명했다. 영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비자 신청용 영어시험이 따로 있었으며 몇 개 국가에서 치러지지만 일정이 자주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택권은 없었다. 매니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원래 5일 일정이었던 베를린 출장을 하루로 줄이고 런던으로 넘어가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9월 9일 하루만 베를린 사무실에서 일하고 9월 10일에 런던으로 넘어가 9월 11일에 시험을 치르고 9월 13일에 샌프란으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비행편과 숙소 예약을 모두 바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며칠을 보냈다. 시험을 준비할 시간도 없어 온라인 사이트에 나와있는 기출문제를 프린트해서 주말 이틀 공부했다. 


그렇게 출장과 출장 사이 정신없이 영어 시험을 치르고 다행히 합격점을 받아 10월에 예정대로 한국에서 비자센터를 방문했다. 비자가 나와 여권을 돌려받을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만 빠른 처리를 보장하는 priority service를 이용해서 일주일 이내에 처리되고 무사히 뉴질랜드로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비자를 받기까지 이외에도 소소한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삽질을 해야 했지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영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을 안고 2020년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의 런던살이가 100일 천하로 끝날 거라는 건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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