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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Jan 24. 2021

런던에서 집 구하기 I

코로나 이전

2020년 1월, Tier 2 General 비자를 손에 쥐고 부푼 마음으로 런던에 들어온 지 1년 만인 2021년 1월, 이번에는 이미 받아놓은 거주증(residential permit)을 지갑에 넣고 입국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임시로 지내다 집을 구해서 들어가야 하는 처지라 데자뷰 같으면서도 너무 다른 세상이라 작년이 마치 전생 같다. 작년에는 발령을 받고 이주한 거라 회사에서 한 달간 에어비앤비 숙소를 제공했고, relocation agency에서 집 구하는 것도 도와줬다. 이번에는 내 돈으로 숙소를 예약했고 알아서 집을 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코로나로 멈춰버린 lockdown 기간 중에 해야 했다.


런던에서 내 집을 찾는 여정을 코로나 이전(2020년)과 이후(2021년) 두 버전으로 나눠 적어보려 한다. 먼저 2020년 B.C.(before COVID)다.


영국에 들어오자마자 해외 이주 서비스(settling in services)를 제공하는 에이전시에서 담당자를 소개 받았다. 거주증 발급, 은행 계좌 개설 등을 도와줬고 집을 구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집 구하는 조건을 묻길래 런던 집값 동향이나 렌트 사정을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다음 항목을 제시했다.

- 통근 시간 30분 이내(사무실을 가장 자주 갈 테니)

- 난방이 잘 되는 현대식 1 bedroom 아파트(영국 집들은 정말 춥다)

- 월세 1,300 파운드 이하(원룸에 2백만원이라니 까무라치게 비싸지만 이걸로도 부족했다)


이 금액으로는 구하기 어려울 거라며 연봉 기준 적절한 월세를 계산해주는 사이트를 보내줬다. 


논의 후 정리한 조건은:

- 1 bedroom apartment

- furnished(월세 사는데 가구와 가전제품 등을 내가 다 구하긴 힘드니까)

- modern 또는 refurbished(오래된 건물이 대다수라 현대식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수도꼭지부터 찬물 더운물이 따로 나오는 곳이 허다하다)

- 월세 1,700파운드 이하


현대식 아파트가 많은 지역으로는 Canary Wharf , Vauxhaull, Kings cross를 추천 받았고, 현대적으로 수리한 아파트까지 포함한다면 Clerkenwell, Islington, Hackney, Dalston까지 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숙소는 1월 말까지였는데 집을 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은 후에 계약과 입주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바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히 "나의 아저씨" Renn 집에서 신세를 질 수 있어 2월 말 정도까지 여유가 있었다.


1월 21일을 Home Search day로 잡고 조건에 맞는 집들을 추려서 함께 다니기로 했다. 그 전에 어떤 집이 나와있는지, 가격과 상태는 어떤지 감을 잡기 위해 부동산 사이트를 보며 혼자서도 보러 다녔다. 


영국에서 많이 보는 사이트:

https://www.zoopla.co.uk/

http://www.rightmove.co.uk/

https://www.openrent.co.uk/


보다 보니 조건이 점점 늘었다.

- 이중창에 너무 시끄럽지 않은 동네

- 2층 이상(영국 기준 first floor)

- 사무실까지 걸어서 30분 이내(Northern line 몇 번 탔더니 지하철로 출근하기 싫어졌다)


Home Search를 하고 나니 심란해졌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위치가 괜찮으면 반지하였고, concierge까지 있는 안전한 건물의 집은 너무 좁고 창문이 작았다. 위치도 나름 괜찮고 구조도 나쁘지 않으면 낡은 티가 너무 났다. 원룸을 보다보니 가장 윗 칸만 냉동칸인 작은 냉장고가 있기도 했다. 


점점 지치고 초조해졌다. 결국 좁고 창문이 작아 답답하지만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고 concierge도 있는 집을 계약하기로 정했다. 일을 진행하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지만 기다린다고 괜찮은 집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논의하는 중에 Shoreditch 쪽에 꽤 넓직한 스튜디오를 발견했다. 방이 따로 없는 대신 확 트인 구조였고 회사에서도 멀지 않았다. 냉장고가 작았고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 외에 괜찮아 보여 이쪽이랑 계약하고 싶다고 말하고 holding deposit을 입금했다. (계약을 원하는 사람이 여러 명일 경우 holding deposit을 먼저 입금한 사람이 우선권을 가진다.) 


이렇게 덜컥 계약금을 걸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창문이 많아 환한 대신 추울 것 같았고 무엇보다 욕실이 매우 작았다. 샤워할 때 몸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 머리를 싸매는 며칠을 보내다 또 새로운 아파트를 발견했다. 회사와 가깝고 현대적인 건물에 concierge도 있는 깔끔한 스튜디오였다. 다 마음에 드는데 걸리는 건 바로 앞이 공사장이라는 것. 이제 막 건물을 부순 단계라 앞으로 2년은 진행될 거라고... 두 번이나 더 가보고 공사업체에 전화해서 공사 일정 확인하고 밤잠 설친 후에 결국 이 집으로 낙점했다. 다른 집에 걸어놓은 계약금은 날리고. 몸도 피곤하고 마음고생도 하고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끝에 3월 2일 입주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두 달도 못 살고 코로나에 쫓겨 한국으로 피난갈 줄은 전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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