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2020년 3월 2일, Old Street 근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바로 일주일 후인 3월 9일부터 에어비앤비 사무실은 문을 닫고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했고 3월 16일 영국은 이동금지령(lockdown)이 내려졌다. 기본적인 식기류도 구입할 새 없이 집에 갇혀지내게 됐고 한국으로 피난을 떠난 4월 17일까지 6주 정도 마주치는 사람이라고는 건물 보안요원과 마트 직원뿐인 나날을 보냈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한두 달 락다운을 피해 있자는 생각으로 떠났으나 영국행 비행기표를 미루고 또 미뤄 결국 2021년 1월 15일 귀국길에 올랐다.
2021년 초로 귀국 일정 가닥을 잡은 뒤, 2020년 말 슬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한 달 반밖에 살지 못한 Old Street 집은 6개월 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었기에 9월 초까지 빈 집에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했고 7월 말 현지에 있는 한국 업체를 통해 원격으로 짐을 뺐다. 화장품과 옷 등은 한국으로 부치고 나머지는 에어비앤비 사무실에 보관해 두었다.
1년 만에 다시 집을 구하게 됐지만 선택 기준은 아주 달랐다. 작년에는 사무실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지만 재택근무가 확실한 올해(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모든 직원들에게 2021년 8월까지 재택근무를 보장했고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통근은 아예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걸어서 공원을 갈 수 있는 곳이 1순위 조건이었다. 마침 영국 유학길에 오른 대학 친구 유진이와 함께 집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의 조건은:
- 걸어서 공원을 갈 수 있는 곳(마침 둘 다 Hampstead Heath를 후보로 꼽았다)
- 2 bedroom + 2 bathroom
- 월세 2,500 파운드 이하
- 1월 말 입주 목표
작년과 마찬가지로 시작은 온라인 사이트부터. 지도에서 관심 지역을 표시하고 예산과 원하는 조건을 필터로 넣어 검색했다. 감을 잡기 위해 괜찮아 보이는 집 몇 군데에 메시지를 보내 virtual viewing이 가능한지를 물어봤다. 코로나 시국이라 부동산 에이전트들이 동영상을 찍어보내주거나 직접 집에 가서 영상통화로 보여준다. 유진이와 동영상을 보고 서로 감상을 나누면서 원하는 조건을 맞춰봤다. 그 중 동영상으로 봤을 때도 좋아보이는 집이 있어 현지에 있는 유진이가 직접 보러 가기 했다.
12월 17일, 유진이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동네를 둘러봤고 나는 영상통화로 확인했다. 집이 마룻바닥인 게 마음에 들었고(카페트는 먼지가 많이 나고 청소하기 어렵다) 방 두 개가 비슷한 크기로 적당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각각 방에 연결되어 있다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수압도 확인하고 난방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봤다. 특별히 걸리는 점이 없었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집들 중 직접 보러 가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집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됐다. 혹시 누가 또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다음 날 오후에 온다고 했으니 그 전에 계약금을 걸어놓아야 했다.
계약금(월세 1주치)을 보내고 나서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Prospective tenancy form - 계약 내용을 컨펌하는 문서 작성(신분과 수입 등의 정보를 제출한다)
2. Reference check - 세입자의 신상을 확인하는 단계(고용 상태와 연봉, 은행계좌 내역을 공유하고 전 집주인의 추천서를 제출한다)
3. Rental agreement - 레퍼런스 체크를 통과하면 진짜 계약서를 쓴다.
4. Right to Rent - 월세 계약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확인한다.(여권과 비자 또는 거주증)
5. 보증금과 월세 송금 - 계약일자 전에 보증금(월세 5주치)과 첫 달 월세를 입금해야 열쇠를 넘겨 받는다.
6. Cleaning - 현 세입자(또는 집주인)가 이사를 나가고 나면 professional cleaning을 한다.(영수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7. Inventory check - 열쇠를 넘겨주기 전, 전문 업체에서 집에 있는 가전, 가구, 각종 집기를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하고 inventory report를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전달한다. 이 리포트를 바탕으로 향후에 거주하면서 문제가 생기거나 손상을 가했을 경우 보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포크 나이프 개수까지 기록이 되어 있고 수십 장의 사진이 포함된 70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받았다.
이 과정을 마치면 입주를 할 수 있게 되니 집 구하는 절차는 여기서 끝! 물론 일은 이제 시작이다. 이사는 물론이고 수도, 전기, 인터넷 연결에서부터 지자체 거주 신고, 집 보험 가입, GP(General Practitioner) 등록 등등... 할 일이 산더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