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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Jun 26. 2021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단 한 번도 회사 생활을 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는 재미없으면 언제든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회사생활이 뭔지 경험이나 해보자 싶어 들어갔던 구글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가 될 거라 믿었기에 남들처럼 커리어 관리를 하거나 승진 등에 욕심이 내지도 않았다. 이직하면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진작 커리어 관리 좀 할 걸 생각했으면서 두 번째 회사인 에어비앤비를 다니는 지금도 이게 마지막 회사라고 또 생각한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한 회사가 빼앗길 수 없는 존재가 된 건 영국에 오면서다. 에어비앤비에서 비자를 스폰서 해줬기 때문에 영국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는 지금, 퇴사는 곧 출국을 의미한다. 그토록 그리던 영국 생활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쫓겨날 순 없는데, 그럼 회사에 붙어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난 지금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


핑계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진짜 이유

구글 입사 후 4년은 회사생활이 신기하고 재밌어 그만둘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1년을 생각하고 입사한 게 2년이 되고 3년이 되면서 어느새 통역사의 길은 멀어져갔고(주도권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통역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언젠간 가겠다고 미뤄둔 한의대는 자꾸 밀리고 있었다. 연차가 늘어가며 성장이 더뎌지고 예전만큼 회사생활이 재밌지 않았지만 이미 구글은 내 삶의 전부가 돼버렸다. 


매일 아침 눈뜨면 밤사이 온 이메일을 확인한 후 출근해 회사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회의로 근무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은 후에야 집중이 필요한 일을 했다. 야근을 핑계로 회사에 남은 사람들과 탁구 치고 수다 떠는 날들도 많았다. 주말에도 회사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봤다. 나에게 사무실은 집의 연장이었고 회사 사람들이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회사가 닿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삶이 되었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는 게 즐겁지 않았지만 그만두는 건 두려웠다. 6-7년차에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첫 상담시간에 가져간 고민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무서워요'였다. 이 사람(회사)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떡하죠? 이만한 사람(회사) 다시 못 만나면 어쩌죠?


상담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왜 회사를 놓지 못하는지 회사와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내 삶도 돌아봤다. 덕분에 8년만에 구글과 이별하고 에어비앤비로 이직을 결정했다. (에어비앤비 계약서에 사인한 날, 정말 구글을 그만둔다는 생각에 패닉이 오기도 했지만 결국 해냈다.) 에어비앤비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에어비앤비 7년차인 지금,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회사는 회사일 뿐이라고 선을 긋기에 에어비앤비는 나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줬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이끌어내고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나 내가 모르는 (혹은 외면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이라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바로 우울해질 게 뻔했다. 내가 사람 관리(people management)를 보람있게 생각하는 이유는 팀원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지금은 영국 비자에서 찾고 있지만, 이게 아니면 또다른 이유로 '지금은' 그만둘 수 없다고 핑계를 댔을 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비슷한 연애 패턴을 반복하는 것처럼, 나는 다른 회사와 또 비슷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회사를 사랑하지만 의존적이지 않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순 없는 걸까. 그보다, 회사랑 연애하지 말고 사람 좀 만나라 쫌! 스스로를 구박하면서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또 핑계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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