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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Feb 13. 2022

편의점 인간

주인공 케이코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공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고 묻어주자는 엄마의 말에도 한사코 구워 먹자고 우기거나, 학교에서 싸움을 말리려고 빗자루로 동급생의 머리를 세게 치고도 그게 왜 잘못된 건지 모르는, 흔히 소시오패스라고 할 법한 행동을 보인다. 가족들이 걱정하고 좌절하는 모습에 케이코는 이후 자발적인 행동을 삼가며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 따라하는 전략을 쓴다. 성인이 되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편의점에서 근무하며 무려 18년 근속이라는 경력을 갖게 된다.


『편의점 인간』은 가볍고 재밌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다름은 인정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 사회다. 18년째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케이코를 보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왜 구하지 않는지, 결혼은 왜 하지 않는지, 연애는 해봤는지 시시콜콜 묻는다. 표면적으로는 걱정해주는 모양새이나 불필요한 참견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과 사람을 불편해하는 우리의 본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시선과 질문을 벗어나고자 케이코는 동생의 조언대로 몸이 아프다는 식으로 변명을 준비하지만 이 해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자 케이코는 변변한 직업도 없는 백수 시라하와 동거를 하게 된다. 단지 남자와 동거 또는 결혼을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편의점 인간』은 블랙 코미디 느낌이라 웃으면서 읽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잘 짚어낸 작품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우린 참 어려워한다. 시라하는 우린 여전히 석기 시대에 살고 있다며 무리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은 버려진다고 말한다. 


다양한 표지. 내가 읽은 건 가운데 표지. 한국판이 제일 재미없게 생겼다.


직원이라는 역할 놀이

자기의 의지대로 행동하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고 불편해하기 때문에 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따라하는 케이코가 편의점에서만큼은 우수 직원인 이유는 최소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편의점 직원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묘하게 공감이 갔다. 나 역시 회사 밖보다는 회사 안에서 더 자신감 있고 내가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2월 9일 수요일, 에어비앤비 런던 사무실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2020년 3월 16일 사무실 문을 닫은 지 거의 2년 만이다. 이사하느라 못 가다 2월 11일 금요일 처음 다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뒤집어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공간에 들어선 기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사 간 집에 인터넷 설치가 제대로 안 돼 화요일은 돼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뒤라 더 그랬다. 이어진 매니저와의 회의에서 말했다. "나 일이 제일 좋아요. 쉬운 게 하나도 없는데, 일이 제일 쉬워. 나 일만 하고 싶어요." 


알맹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일본 편의점표 에그마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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