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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Mar 26. 2022

파친코(Pachinko)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코로나에 걸려 골골대며 침대에서 뒹굴 때 위로가 된 건 두 권의 책이었다. 이민진의 『파친코(Pachinko)』와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더 로드(The Road)』.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파친코』를 읽으며 그 스케일과 전개는 다르지만 왠지 박경리의 『토지』가 떠올랐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세대에 걸친 한 가족의 서사를 그린 점이 닮았다. 다만 작가의 시선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토지』가 등장인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담았다면 『파친코』는 온갖 차별과 시련에도 꿋꿋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강조됐다.


이민진 작가는 7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다. MIT 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에서 한 강연에서 이민진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임원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낯선 땅으로 이민을 떠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민진 작가의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고 작은 귀금속 도매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민진 작가의 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16살이었고 할머니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원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미국 피난선에 아들을 태워보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쟁은 가족을 잃고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부산 출신인 이민진 어머니의 반대에도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한 이유다. 


Refugees are not an abstraction. I am the daughter of a refugee. And I am here at MIT right now because America graciously allowed me to have sufficient peace so I could read and write books.
난민은 추상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바로 난민의 딸이에요. 오늘 MIT에 강연을 할 수 있는 건, 미국의 관대한 정책으로 평화를 누리며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죠.(번역은 내 맘대로 의역임)

As a fiction writer, I want to tell you something. I have an agenda. I'm trying to make you Korean. 
소설 작가로서 고백할 게 있어요. 오늘 목적을 갖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을 한국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흔히 재일교포라고 통칭하는 일본 거주 한국인은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후 수 세대에 걸쳐 일본에 거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으로 분류되며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사람, 조총련을 통해 북한 국적을 부여받은 사람, 그리고 일본에 귀화해 일본 국적을 갖게 된 사람. 이민진 작가는 4대, 5대에 걸쳐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서도 한국 국적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이러한 폐쇄적인 정책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려는 목적을 가진 소설은 아니다. 일본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일본인들도 등장한다. 아버지가 자살을 해서, 이혼 가정의 자식이라, 가난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주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않는 일본 사회를 그린다.  


『파친코』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Korean Japanese)의 삶을 다룬 최초의 영문 작품이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인,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애플TV에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힘을 새삼 느꼈다. 문화 콘텐츠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얼마나 강력한 수단인지. 한 권의 소설이 수십년 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우수한 작품이 한국어로 쓰였다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긴긴밤』 을 읽고 너무 좋아 영문으로 번역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알아보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하는 한국문학 번역아카데미 과정을 지원해 서류와 필기, 무려 면접시험까지 보고 수강하게 됐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언젠가 영문으로 번역해서 출간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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