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에 매여있는 엄마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게 되는 이유
20대의 나는 어지럽게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면, 내 시간과 공간을 잡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건들을 바로 치우는 사람이었다. 물론 노트북 옆 보조 책상에 자잘한 소품들을 쌓아두기도 했지만, 치우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매사 정확했고, 소모적인 일에 몰두하는 걸 극도로 혐오했으며 성장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는, 색이 바랜 티셔츠에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묶고 노트북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이리저리 떠들어대는 유튜브를 힐끔 본다. 한 손에는 네이버 부동산으로 매가를 검색하고, 다른 눈으로 코로나19로 집콕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놀고있는 아이를 주시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29개월이 지났다.
꼬물거리던 생명을 내 몸 속에서 키워내어 한몸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둘이 된지 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은지 2년차에 기적적인 자연임신으로 나를 찾아온 아들.
내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판에 가능할 까 싶었지만
24개월까지 가정보육 하리라는 혼자만의 다짐 속에 오롯이 키워냈다.
물론 값을 매길 수 없는 친정엄마의 헌신과 아이돌봄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지만.
한글 책이든, 영어 책이든 스스로 가져와 책상 앞에 앉아 10분이고, 20분이고 읽어내려갈 때면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성과측정의 도구로 절대 사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발달검사도 해보고 싶을 만큼
아이는 빠르게 성장한다. 이제 슬슬, 우리 좀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올까? 싶어서 등록해 두었던
어린이집은 코로나 세상에 갇혀 기약없이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긴급보육이 무색하게 초롱이반 친구들은 모두 등원하고 있는데, 나만 끼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각자의 상황을 모르지 않는데도 속절없이 다운되지 않는 확진자 숫자에 분노가 치민다.
30대 중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는 재테크 문맹에서 탈출 하는 중이다.
기존의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을 간직한 SNS는 치워버리고
자본소득의 증대를 위해 심취해 있는 총이엄마만이 숨쉴틈 없이 팔다리를 움직인다.
상념에 젖어 멍때림의 시간들이 줄어듬으로써
삶이 조금은 팍팍해졌지만,
2019년 11월 청약의 세계에 입문해 2020년 9월말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나는 재테크 문맹에서 얼마나 탈출했는지 기록해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마포에 사무실을 두고 있음에도 아픈 마누라를 위해 처갓댁이 있는 경기도로 내려옴으로써
출퇴근 시간에 고통받으며 삶의 질을 놓쳐왔던 짝꿍을 위해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뭐, 현금 15억 들고 있었다면 머리아프게 규제 공부해가며 매수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었지만)
짝궁은 시기를 놓친게 억울한 건지
이대로라면 영영 직주근접의 삶을 실현하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은행빚을 내고 서라도 상투잡이를 하자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아무리 역세권 신축이라도 지금보다 작은 평수에 친정엄마 없는 살벌한 서울로 이사가려니
마음 한켠으로 영 끌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시켜 살고 싶었지만, 투기꾼 취급을 받으니 그저 정부가 시키는대로 할 뿐.
세상의 불의에 목놓아 외치며 촛불을 들던 나는 어디로 가고
네이버 부동산을 눈알 빠지게 바라보며 아이 기저귀를 갈아 주던 내가 있었다.
2주택자는 사회의 악이라며 근로소득만이 신성한 값어치가 있음을 주장하던 짝궁도
내 집 마련을 위해 독이 올랐던 지난 10개월.
그 시간들을 기록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