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타 Sep 27. 2021

삶의 낭떠러지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홀린듯 영상을 봤다. 

존스홉킨스 의대 지나영 교수의 영상이었다. 

제목 임팩트가 강했다. 

"삶의 낭떠러지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


나이 30살에 강직성척추염 진단 받던 그날, 

희귀난치병 중증질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 나로써는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어서 

그 자리에서 20분동안 영상에 집중했다. 


강의는 내용은 이랬다. 


나이 40살이 되는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등 쪽과 등 꼴에서 생전 느껴보지도 못한 통증을 느낌


본인이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박사이자 교수이고, 남편도 의사 인데

온 갖 검사를 해보아도 병의 원인이나 질병이 안나옴


본인이 정신과 의사인데,

다른 의사들이 '우울증이나 다른 원인 없냐'고 물어봄


결국 검사를 해보고, 별 별 검사를 해보았지만

일어나 걷지도 앉지도 못하겠는데 병명이 나오지 않아서

2년 가까이 누워서 살게 됨


도대체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가?

가만히 누워있지 않으면 어지러워서 토하고,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삶의 바닥을 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병적인 피로감이 느껴지면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음.

완전히 맛이 갔다는 표현이 정확함


결국 자율신경계 이상이라는 병명이라는 것을 진단 받았는데

난치병 처럼 아무것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이를 악물고 매일 매일 조금씩 걷고 누워서 또 퍼지다가

다시 걷고 퍼지기를 반복함.


정말에 깊게 빠져있을 때즘,

악성 섬유종을 앓고 있는 옆 환자에게서 감명깊은 한마디를 들음.  

삶이란 내가 뿌듯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만성질환이 있는 상태에서도 

괴로워만 하고, 끝났다, 망했다만 말할것이 아니라 

그 괴로운 상황에서도 

여기서도 내가 뿌듯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것이 의미있는 삶이다. 

건강하고 완치되어서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나는 결국 이 레몬들을 가지고 레모네이드를 만들고야 말겠다.


내가 여기서 뭐라도 할 수 있는게 없을까? 를 생각해보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을 때

누워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서

인생을 회고 하면서 첫 책을 집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몇달을 누워서 쉬어야 하는 때가 있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미치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아프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체력 배터리가 10% 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인생을 즐거운 것만 하고 살기에도 너무 짧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까봐, 내가 루저가 될 까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꾸역꾸역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기에는

나의 에너지가 너무 귀하다.


그래서 결국 내면을 바라보는 힘, 그것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것,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한 걸음을 떼어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쓰디쓴 레몬 끝에 만든 레모네이드는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


처음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 그 사이에 가장 통증이 심하게 왔었다.

지금이야 만성 통증이 되어버려서 왠만한 통증에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초기에는 뼈를 칼로 썰어내리는 듯한 통증을 겪으면서 꼬박 잠을 못이룬 날들도 많았다.


잠을 자지 못하니, 우울감이 급격하게 찾아왔는데

류마티스 교수님이 빨간색 우울증 초기약을 처방해주셨던게 기억에 생생하다.

그 약을 먹으면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잠도 잘 수있을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딱 한달 정도 먹었을까?

동기들은 대리 달고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 

나는 결혼하자 마자 희귀난치병이 왠말이냐고 방구석에 쳐박혀 눈물만 흘렸던 그때의 '나' 는  

끝모를 추를 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수 없어서 그저 물 한잔 마시는 것으로 기운을 냈다.


별 다른 것이 없었다.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지 않았던 날.

어느 날 통증이 강하게 나타날지도 계산도 안되고 

내 몸에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누구와의 약속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그 속에서 그저 내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을 실천했다. 

그렇게 하루를, 또 다른 내일 살다보니 

점점 괜찮아지더라.


공중분해되는 것 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려는 내 마음과 달리 

정신은 신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래서 좌절하고 속상했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디폴트 값 (초기 세팅값)을 빠르게 깨닫고 인정하는 수밖에.

모든 괴로움은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고민을 길게 갖지 말고 거기까지 생각한다음엔 바로 일어서자.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아야 아는것이고

고민만 하고 할 수없다고 생각해 보았자 되는일은 하나도 없다.

내 디폴트값을 기억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 물 한잔 떠마시고 정신차리는 일. 

책상 정리를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일들은 할 수 있다. 


지금 아픈 당신도, 그리고 아팠던 나도

해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4살 아이 엄마의 혼돈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