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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Sep 05. 2024

두 번째 직업은 어쩌다 상담교사

프롤로그


어쩌다 상담교사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연히’라고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존 크롬볼츠는 개인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나, 우연히 만난 사람 등 우연적인 요소가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계획된 우연’ 이론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상담교사가 된 것도 우연적인 요소들이 축적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진로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다는 것 하나는 후회로 남습니다. 대학에 간다는 것만 이정표에 있었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지 않았거든요. 대학 학부 전공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결정했을 정도로 대학에 가서 뭘 배우는지 정보가 없기도 했고, 탐색하려는 의지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잘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학과에 진학하고 나서 우연한 기회로 교직이수 과정을 밟게 됩니다. 하필 어떻게 그 학과에 '전문상담교사' 교직이수 과정이 있었던 것인지, 우연의 한 조각이겠지요. 상담교사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랬기에 상담교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교직이수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발을 담가본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전문상담교사 2급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업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받았던 심리상담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을 뿐, 졸업하고 나서 그 자격을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상담교사가 아닌 청소년 교육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오래 지나지 않아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옷장 한 구석에 밀어두었던 '전문상담교사 2급' 자격증을 떠올렸습니다. 그 당시 생각으로는 전문상담교사를 두 번째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은 제법 합리적이었어요. 그때 첫 직장을 그만두게 했던 요인이 직업의 안정성과 워라밸이었으니까요.


전문상담교사는 학교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니까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방학도 있고, 워라밸도 있는 직업이 아니겠어요? 딱 제가 찾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평소에 심리학에도 흥미가 있었고, 심리상담 긍정적으로 경험했던 것도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꽤 긴 시간 준비 해야 하는 임용시험이었는데, 잘못하면 시간낭비를 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가야 했습니다. 리스크가 있으니 오히려 배수진을 치고 시험 준비를 할 수 있기도 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했던 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합격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거야'라는 비합리적인 환상을 동력 삼아 수험생활을 이어나갔죠. 그 환상 가득한 자기 암시는 임용시험 합격을 도와준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지만,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아주 넓혀놓아서 첫 출근 이후에 그야말로 '현타'를 세게 느끼게 됩니다. 막상 학교 현장에 와보니 꽃길은커녕 길도 없는 황무지였거든요. 황무지도 좀 순화된 표현이고 가시밭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에 초등학교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순간의 선택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최종합격 발표가 나던 날, 교육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초등학교 발령을 원하는지, 중고등학교 발령을 원하는지 묻더군요. 합격 당일 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짧은 생각 끝에 초등학교 발령을 선택했고, 그렇게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초등학교 상담교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죠. 그럴 법도 한 것이 초등학교 상담은 중고등학교 상담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었습니다. 제가 첫 발령을 받았을 당시에 제가 있는 지역에 초등학교 상담교사 선배가 5명에 불과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졸지에 이제 막 길을 닦아가는 선구자 명찰을 달게 된 꼴이었죠.


그야말로 태어나자마자 학교상담실에 내던져진 채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배 선생님들과 동기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제는 더 이상 새내기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해질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천직을 만나서 너무나도 행복한 상담교사로 살아가고 있답니다!'라는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저는 '이게 맞아?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평생 상담교사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아니 꽤 자주 하거든요. 평생 직업이 없는 시대에 진로 고민은 끝이 없는 건가 봅니다.


우연히 발을 디딘 이곳에서 상담교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여전히 갈팡질팡 좌충우돌하고 있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글이 특히 새로 시작하는 상담선생님들께 공감과 위안을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새내기 상담선생님들이 겪을 막막함이 무엇일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더불어 일반 독자분들께도 학교상담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글이기를 바라봅니다.


앞으로의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내담아동의 보호를 위해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하여 각색한 것임을 밝힙니다.




사진: UnsplashFree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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