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에 어디로 발령을 원하냐는 교육청 직원의 말에 초등학교에 발령을 내달라고 답했던 날, 그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사고 과정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초등학생=어린아이. 어린아이의 고민이라고 해봤자 단순하고 귀여운 수준일 테니 나 같은 초보에게는 초등학교가 낫겠지'라는 일차원적인 생각 끝에 내린 답이었습니다. 임용시험 최종합격 당일 받은 전화라 깊은 고민을 할 시간이 정말 없었다고 이제와 변명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그때 깊게 생각해 보았더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는 것은 매한가지라, 고민한다고 다른 답이 나왔을까 싶기는 합니다.
초등학교 상담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초등학생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집단입니다. 발령 전 초등학생이라고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는 1학년 어린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운동장을 뛰노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에는 그런 어린이만 있는 것이 아니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니는 학교가 초등학교인 것은 매우 상식적이지만 교육청 직원과 통화하던 그 순간에는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렸던 겁니다. 초등학교에는 이제 막 한글 공부를 끝낸 1학년 어린이도 있고, 2차 성징이 시작되어 목소리가 걸걸해지기 시작한 6학년 남학생, 화장을 하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성숙한 6학년 여학생도 있어요.
머릿속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3학년 학생의 모습을 떠올려 볼까요? 키가 좀 더 크고 보다 성숙한 생각과 태도를 갖게 된다는 차이 정도는 있겠지만 완전히 다른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지요. 이번에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떠올려보세요. 완전히 다른 진화 단계에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새싹 같은 아이들이에요. 반면에 6학년 아이들은 2차 성징이 시작된 경우가 제법 많아서 외형부터 1학년 아이들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이제 막 학교라는 사회에 발을 들인 1학년 학생과 청소년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6학년의 차이는 외형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모두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지요. 가끔은 연령은 1학년인데 2학년이나 3학년 같은 학생을 만나기도 하고, 6학년인데 3학년이나 4학년 같은 학생을 만나는 일도 있어요.
초등학교 상담실은 이제 막 한글 공부를 마친 어린이부터 예비 청소년까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발달의 수준이 다르다 보니 연령별로 조금씩 다른 모드로 아이들을 만나야 했어요. 모두 초등학생이지만 학년마다 참 달라요.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똑같은 단어를 이야기해도 6학년 학생은 알아듣지만 1학년 학생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학년 학생을 만날 때는 더 쉬운 단어를 사용해야 하고, 같은 말이라도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렵고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많이 아는 것보다는 쉽고 간단명료한 단어와 예시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성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걸 물어본다고?' 하는 단어의 뜻을 묻기도 하거든요. 상담 중에 '장소'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본 학생이 있었는데, '장소는... 장소인데... 이걸 뭐라고 풀어서 설명해야 하지' 하고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는 단어 뜻에 대한 설명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국어사전을 검색합니다. 상담하는데 단어 뜻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둘째,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마냥 가벼운 고민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고민 중에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가정 해체나 방임, 만성우울 등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만나는 케이스도 자주 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더 치열하게 또래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합니다. 어른이 되기를 무서워하고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도 고민하고요. 자신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부모의 노고에 대해서도 생각할 줄 알아요. 부모가 자신을 걱정할까 봐 자기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고, 어른들에 대한 반항 뒤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자조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고민만큼이나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고심하게 되는 것이 있어요. 고민의 무게와 별개로 아이는 아이라는 것인데요. 아직 복잡하고 체계적인 사고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서 어른들만큼의 통찰이나 깊은 사고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디까지 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어디까지 이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이 말이 아이에게 어렵거나 너무 깊지는 않을지 고심하게 됩니다. 똑같이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이라도 저학년 아이의 것과 고학년 아이의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질문이나 말도 달라지고요. 그렇다고 해서 6학년 아이들은 다 큰 어른 같냐 하면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생 한 명을 만나는 데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초등학생이라고 쉽게 봤다가 머리를 쥐어뜯은 날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