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공방을 찾아갔다. 향수를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3층짜리 낮은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가 공방의 위치가 2층이라는 것을 보고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12층이었다면 계단은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을 테지만,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택한 스스로를 조금 기특해하다 보니 순식간에 2층이었다. 태권도 학원과 작은 사무실을 지나 복도 가장 끝에 다다르자 향수 공방이 보였다.
공방의 문을 열자마자 좋은 향이 반겼다. 향을 다루는 공간이라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공간을 채운 조명의 빛은 따뜻한 노란색이었고, 아이보리톤의 벽과 나무소재의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향기롭고 포근한 공간에서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좋은 향을 맡는 일을 좋아한다. 좋은 향기를 맡는 것만큼 순식간에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일도 드물다. 향수냄새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숲 속에 있을 때 나는 향이나 꽃다발을 가득 안았을 때 나는 향도 좋다. 편안한 집 냄새도 좋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미세하게 바뀌는 바람의 향도 좋다. 향수나 바디로션의 향이 좋아하는 사람의 체취와 섞여 그이의 고유한 향으로 바뀌었을 때도 좋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잔뜩 널어두면 섬유유연제 냄새가 집 곳곳에 퍼져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깨끗한 향이 맞이해 주는 순간도 참 좋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 가장 먼저 나를 유혹하는 것도 역시나 맛깔스러운 냄새다. 어린 시절 동네 치킨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깨끗한 기름에 갓 튀긴 치킨의 고소한 냄새가 얼마나 내 발길을 붙잡았던가. 길을 지나다가도 좋은 향기가 스쳐 지나가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 향기만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 지나갔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면 향은 시선을 끌고 발길을 끄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원데이 클래스가 진행될 테이블에는 베이스 노트, 미들 노트, 탑 노트에 해당하는 향의 이름이 적힌 갈색 작은 병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강사님의 지시에 따라 작은 병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향에 점수를 매겨 종이에 적었다. 맡자마자 '와, 이거 너무 좋잖아!' 했던 향이 있었던 반면, '윽,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생각했던 향도 있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천차만별이다. 평소 자주 들어봤던 향료의 냄새를 맡으며 '아, 오크가 이런 냄새였구나, 아쿠아향은 이런 거구나' 하고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향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긴 후에는 원하는 향의 비율을 정해 향을 배합하고 어떤 향이 나는지 시험해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선택한 향료를 떠올려보면 베이스 노트는 다량의 모스와 약간의 화이트 머스크, 미들 노트에는 미모사가 주된 향료였고, 탑노트는 무화과 향이었다. 처음부터 피오니 아니면 무화과 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공방에 무화과 향이 있어서 반가웠다.
향 배합은 두 번 할 수 있었는데, 첫 번째 만든 향은 여성스러운 비누냄새가 났고 두 번째 만든 향은 시원한 비누냄새가 났다. 무화과 향의 향수를 만들고 싶어서 탑 노트로 선택했으나, 무화과 향이 두드러지지는 않아 갸우뚱했다. 그럼에도 두 가지 향 모두 마음에 들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어떤 향으로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첫 번째 향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은 시원한 향보다는 여성스러운 향이 더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향 원액을 자신이 정한 비율대로 넣고 향수베이스를 채우면 되는 것이라, 향 배합만 끝나면 향수를 완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향수병에 향료를 가득 채우고 나니, 향수병 꾸미기를 할 수 있다며 강사님이 다양한 스티커를 가져다주셨다. '심플 이즈 베스트'를 외치며 작은 이니셜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내 첫 수제향수에 대한 성의를 표했다. 향수는 일주일정도 숙성하는 기간을 거쳐 사용하라는 안내를 받는 것으로 원데이 클래스는 끝이 났다.
일주일이 지난 후 '과연 어떤 향으로 숙성이 되었을까' 기대하며 향을 맡아보니 무화과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공방에서 맡았을 때도 무화과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당혹스러웠다. 숙성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보관법에 실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분 탓인지 공방에서 처음 배합하고 맡았던 향이 더 좋았다. 갓 나온 빵이 제일 맛있듯이 향수도 갓 만든 향수가 제일 신선(?) 한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무화과 향료를 넣었지만 무화과 향이 나지 않는 신기한 향수를 요즘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잊지 않고 뿌린다. 갸우뚱했던 고개를 바로 세우고 '무화과 향이 나지 않는 무화과 향수라니, 특별한걸'이라며 예쁘게 여기는 중이다.
한 번 해보니 동네 공방을 찾아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 보는 것이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에 스타카토(*)를 넣는 괜찮은 방법이라는 감상이 남는다. 이래서 뭐든 일단 경험해 보면 다 남는 게 있다고 하나보다. 이번 경험으로 향수도 남았고, 감상도 남았고, 환기된 기분도 남았다. 대단한 변화는 부담스럽고, 작은 행동으로 일상에 기분 좋은 변주를 주고 싶다면 동네 공방을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새로운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타카토: 음악에서 특정 음을 짧게 연주하라는 악상 기호로, 원래 음의 길이를 줄여 연주함으로써 곡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