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쯤이던가, 혼자 미국 서부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여행의 끄트머리에는 미국이 아닌 과테말라를 며칠 여행했었다. 뜬금없이 웬 과테말라인가 하면 가까운 친척이 그곳에 살고 있었던 덕분이다. 혼자 중남미 여행을 한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LA에 잠시 묵었던 한인민박 사장님은 내 다음 행선지가 과테말라라는 것을 듣고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그곳을 친척의 도움을 받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은 기회였다.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과테말라의 공항은 아주 작았다. 몇 번 게이트에서 만나자는 약속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저곳이 출구겠구나 하는 곳으로 나가자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온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첫 행선지는 식당이었다. 치킨을 파는 곳이었는데, 미국 사람들도 좋아하는 치킨 브랜드라고 했다. 제법 깔끔한 식당에 치안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졌고, 가져간 작은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염지가 잘 된 갓 튀긴 치킨은 국적을 불문하고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마주 앉은 나의 친척은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놓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눈에 띄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같은 회사 직원의 경험담이라며 들려준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정도의 일이었다. 퇴근길에 무장강도들이 총을 들고 차를 둘러싼 뒤에 핸드폰이며 가진 현금을 몽땅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카메라 같은 고가의 물품을 드러내는 것은 나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숙소에 가는 길에 들른 주유소에는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서있었고, 가게나 집으로 보이는 건물의 창은 쇠창살로 한 번 더 가려져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총과 쇠창살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친절하고 소박한 일반 사람들의 일상을 접할 때면 '이곳도 그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테말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아티틀란 호수에 갔을 때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맑고 잔잔해서 평화롭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체 게바라가 아티틀란 호수에 방문했을 때 혁명을 잠시 멈추고 싶다고 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럴 법도 했다. 자연이 주는 온화함의 힘은 웅장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곳 또한 평화로운 전원마을이었다. 마을을 둘러보던 와중에 멀리 빨래터가 보였다. 빨래터에는 대여섯 명쯤 되는 여인들이 무릎을 접고 쪼그려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잠시 그 여인들을 보다가 문득 누군가의 삶의 현장이 관광객의 볼거리로 소비되는 것은 과연 괜찮은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실례가 되는 일인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거의 동시에 실례라는 마음 이면에 나의 편협한 시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나보다 잘나고 행복한 사람을 볼 때보다는 나보다 불행해 보이는 누군가를 빤히 보는 일이 실례에 더 가깝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세탁기에 옷을 넣고 버튼 한 두 번 누르면 편하게 세탁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빨래터에 쭈그려 앉아 옷을 치대며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들이 불쌍하다거나 안 됐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가. 막상 그 여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떳떳하며 나보다 훨씬 행복하고 평화로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오히려 취업이며 학점이며 불안한 것 투성이었던 그때의 나보다 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인생을 멋대로 평가하는 오만을 부렸다.
과테말라 빨래터의 여인들을 보며 떠올렸던 생각이 최근에는 엄마로 이어졌다. 그 여인들을 보고 나서 곧장 들었던 의식이 이제야 엄마에게로 이어진 것을 보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참이었나 보다. 지금까지 내 멋대로 엄마의 인생을 재단했던 것이다. 엄마는 내게 지혜를 주는 멘토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생각하면 눈물이 고이는 존재였다. 그동안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고단하고 힘들었을 거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발랄하고 반짝이는 빛으로만 가득한 순간들이 있는 법인데, 엄마는 예외로 두었다. 엄마의 인생에도 빈틈없이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깡그리 무시하고 안쓰럽다는 꼬리표를 내 마음대로 엄마에게 달았다.
은연중에 내가 엄마에게 달아놓은 꼬리표를 엄마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이번에는 미안해서 눈물이 고인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고 또는 불행할 것이라고 평가했느냐 이 말이다. 한 인간의 인생은 너무나도 복잡한 서사를 담고 있어서 타인이 감히 그 전체를 다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평가를 할 수도 없다. 그 거대한 서사가 궁극적으로 만족스러웠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사자 한 사람뿐이다. 그의 행복은 오로지 그의 것이니 내가 정한 잣대로 평가한 그의 성적표에 0점이 적혀있든 100점이 적혀있든, 그것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그 누구의 행복도 평가하지 말아야겠다. '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로 내가 정한 틀에 누군가를 욱여넣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그가 그로써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며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여행에는 흥미가 없다는 누군가의 행복을 인정하고, 자식 없이 사는 누군가의 행복을 인정하고, 학문보다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누군가의 행복을 인정하고, 자신의 꿈보다 가족이 먼저인 누군가의 행복을 인정하고, 결혼 제도를 거부하는 누군가의 행복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는 모르게 내가 붙였던 불쌍한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다시 몰래 떼고 엄마를 본다. 결코 힘들기만 하지는 않았을, 분명 뿌듯하고 기뻤을 그녀만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또 그저 자기 자신으로 빛났을 그녀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제야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뒤덮여 회색인 줄만 알았던 엄마의 인생이 실은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인생은 그 모양 그대로도 충만할 테니 더 이상 엄마의 행복을 의심하고 걱정하지 않으련다. 누구보다 엄마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