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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Nov 16. 2023

몸도 마음도 퇴근하겠습니다

직업적 페르소나 벗기 

  페르소나는 자아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 외면적으로 보여지기를 원하는 자기 모습, 사회적 자아로서 사회적 역할에 따라 변화하는 ‘ㅇㅇㅇ로서의 나’와 같은 인간의 가장 외적인 인격이다.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페르소나는 쉽게 이야기하자면 사회적 가면이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회적 가면을 쓰곤 한다. 친구, 연인, 가족, 직장동료 앞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과 만나며, 어떤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은 적응적이고 건강한 모습이다. 


  이런 사회적 가면은 사회적 역할을 해나갈 때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이것이 과할 경우에는 사회적 가면이 자기의 참된 모습까지 잠식해 버려서 진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와 자아가 동일시되면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페르소나가 과하게 팽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직업적인 특성으로 인해 더 과도한 사회적 역할과 가면을 요구받는 직업군이 있다. 교육계, 법조계, 의료계, 연예계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물론 교육계, 법조계, 의료계, 연예계 등에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기대하게 되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페르소나와 자아가 과하게 동일시되면 개인은 병든다. 개인이 병들면 사회도 병든다.


  유치원 교사가 술집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학부모가 교사답지 않다며 민원을 넣어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치원 교사가 유치원 근무 중에 아이들 앞에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퇴근 후 사적인 자리에서 술을 마신 것이었다. 사적인 영역에서도 과도하게 교사로서의 가면을 계속해서 유지하라는 요구를 받은 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도 퇴근 후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 있고,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도 개인의 영역에서는 딩크를 선언하고 본인의 출산을 거부할 수 있다. 법조인도 법정 밖에서는 감정이 앞서는 행동을 할 수 있고, 늘 웃고 밝은 모습만 보이는 아이돌도 사석에서는 울기도 하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상담교사라면 세상 모든 선함과 너그러움을 품은 천사나, 어떤 말에도 의연한 부처님 같을 것이라는 필터를 끼운 채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기대와 달리 나 또한 상담실 밖에서는 짜증을 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인간일 뿐이다. 


  페르소나가 괴로움의 원천이 되지 않으려면 일과 일상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의 영역에서는 책임을 다 하되, 일이 끝난 후라면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잠시 벗어두고 온전히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나'만큼,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 본래의 '나'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결국 직업인으로서의 '나'도 개인으로서의 '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몸은 학교에서 벗어나는데, 마음은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오늘 만난 그 아이와 다음 상담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도움이 될까?', '상담교사가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나?'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럴 때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말풍선을 지우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하려고 한다. '상담교사로서의 나'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일과 일상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해지려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개인의 영역이 필요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업적 페르소나의 과한 압력이 사회적 병리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들이 아직 또렷하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외부에서 오는 직업적 페르소나의 압력이 줄어들면 스스로 경계를 세우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호했던 일과 일상의 경계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 한순간에 되지는 않을 테지만, 건강한 개인과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퇴근 후에는 직업인으로서의 페르소나를 벗고 본래의 '나'로 온전히 돌아가는 연습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직업인으로서의 '나'가 개인으로서의 '나'를 모조리 잠식해버리지 못하도록 퇴근할 때는 몸도 마음도 함께 일터를 벗어나자.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자.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진: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권일용 교수 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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