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달쯤 앞두었을 때의 일이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할아버지께 예비손주사위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한 날이 되기 하루 전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나는 장례식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결혼을 앞둔 내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어른들의 만류에 나는 집에 계시는 할머니 곁을 지키는 것으로 손주의 도리를 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체력이 많이 약해지신 상태여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요양을 하기로 하셨고, 그동안 나는 할머니 곁에서 식사를 챙겨드리고 이부자리를 봐드렸다. 며칠 동안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할아버지와 만나고 함께 산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마음고생을 적잖이 시켰다는 것을 소문처럼 전해 들은 적은 있었지만 당사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고생을 시킨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기보다는 대화의 부재가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쌓여 오해를 낳고,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의 결혼생활에서 원했던 것은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대화'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길을 걷다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년의 부부를 보고 참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엄마를 비롯한 오 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내고, 80세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할머니도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여자이고 아내였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할머니는 부부 사이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꼭 대화하고 의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셨다. 큰 결정을 할 때는 물론이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잡은 노년부부 이야기를 하셨던 걸 보면, 그 '대화'라는 것이 꼭 의사결정을 위한 소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표현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고 아주 서글프게 우셨다. 마음고생을 시킨 남편이라도 이제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은 사무치게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 할머니에게 묻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우는 모습은 슬픔뿐 아니라 한이나 분노, 애처로움과 쓸쓸함, 연민 같은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모두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와 보낸 며칠의 시간을 통해 부부의 세계라는 것은 타인이 침범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부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고유의 공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라면 더욱이 둘만의 사건과 둘 만의 해석, 둘 만의 고난과 극복, 둘 만의 기적과 행복 같은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서 남들은 알 수 없는 둘 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
원가족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원가족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가 느끼는 감정이 연인 간의 사랑이나 가족애 그 이상의 어떤 것이겠다는 것은 자연스레 예상이 된다.
이제 막 부부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지금, 부부로 살기로 한 이상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항상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 미안함의 표현을 아낌없이 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긴다. 30년쯤 뒤의 우리 부부는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을까. 아직은 너무 먼 미래라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이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