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유형 T(사고형) vs F(감정형)
진보 vs 보수
찍먹 vs 부먹
민초파 vs 반민초파
남자 vs 여자
MZ세대 vs 기성세대
갤럭시 vs 아이폰
언젠가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둘로 나눠서 네 편과 내 편을 나눈다. 이제 유행을 지나 보편적 개인정보가 된 것 같은 MBTI 유형을 예로 들어보자. 일각에서는 T형 인간을 마치 감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느끼지 못하는 AI인 것처럼 묘사하고, F형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며 감정에 매몰되어 행동하는 미성숙한 인간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민트초코를 먹거나 먹지 않을 수 있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거나 찍어먹을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진보나 보수를 지지할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 MZ세대와 기성세대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같이 살아갈 수 있고 갤럭시를 쓰는 사람과 아이폰을 쓰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집단을 나누는 현상은 'MBTI별 반응', 'MZ오피스' 등 각종 밈을 통해 일상적 유머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유머코드가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거나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단 나누기가 일상적인 농담으로 소비되는 정도라면 다행인데, 한편에서는 그것을 넘어서서 극단적 형태로 발현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최근 뉴스를 뒤덮은 파괴적이고 비합리적인 일부 집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을 넘어 두렵고 참담할 따름이다.
한국의 갈등지수가 OECD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왜 이렇게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인지 생각을 하다가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이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최근 서울시에서 외로움 전담 조직인 '고립예방센터'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외로움과 고립감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사회가 나서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구성원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이미 영국에서는 외로움부 장관직이 신설되었고, 2021년 일본도 고독 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대책실을 출범했다. 공교롭게도 영국과 일본 역시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갈등지수 조사 결과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위험 수준에 다다른 세상에서 '너는 내 편이 맞지? 나는 네 편이지?' 확인하며 편을 가르고, 그 결과로 소속감이라는 보상을 얻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해 본다. 물론 진화적으로 집단에 속해 살아가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일이었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내집단 편향이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다만 일부 소속감을 얻기 위해 내집단 편향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감능력을 차단하고 공격하는 극단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발생한 사법부에 대한 폭력사태도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집단은 비하하고 배척하는 내집단 편향이 극에 달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책 <건강의 뇌과학>에 따르면 뇌과학적으로 외로움과 고립은 뇌 구조를 바꾼다. 외로움과 고립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 증가, 뇌의 연결성 감소, 감정 조절 능력의 저하, 불안 및 위협에 대한 경계, 공격성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외로움과 고립이 앞서 명시한 위협에 대한 경계 증가, 감정 조절 능력 저하 등 뇌 구조 변화를 매개로 다소 과격한 방식의 내집단 편향 및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에 느슨하게나마 연결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외로움과 고립감을 낮추고, 내집단 편향의 극단성을 완화하여, 갈등이 이완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진화의 과정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하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떠올랐다. 저자는 내집단의 구성원들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평소에는 잘하던 공감도 하지 않고, 이에 외집단 구성원들도 위협을 느껴 상대 집단을 비인간화하여 보복성 비인간화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타인의 생각에 대한 감수성이 강화되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덧붙인다.
나와 달라서 어색하고 이상하게 들리더라도 상대의 생각에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 다양성을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좋은 메시지는 글로는 쉽게 읽히지만 늘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극렬하게 갈라져 버린 것 같은 현실에 희망이 있을까 암담하기도 하다. 몇 사람이 상대에게 귀를 기울인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회의적인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이 차츰 모인다면 변화의 물결을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기대를 놓아버릴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