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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Jun 26. 2022

기차 타고 센텐드레

제시(에단 호크) 없는 셀린(줄리 델피)

허황된 꿈일까, 일단 "아니"

이번 여행을 급하게 준비하고 무작정 루트만 큰 그림으로 그려놓고, 시작한 여행이라 부다페스트 근교 여행은 생각도 안 했다. 신나게 부다페스트 여행을 하고 들어와서 자려고 누운 어느 날 밤, '내일은 근교로 여행을 가볼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한 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꼭 실제로 행하고 마는 집요한 습관이 있는 나로서 안 갈 수 없었다. 그렇게 그날 밤, 구글의 힘을 빌려 '부다페스트 근교 여행'을 검색해서 제일 인기 좋은 두 곳 중 한 곳, 바로 '센텐드레(Szentendre)'를 선택하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메트로를 타고 이동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약간 한국의 용산역 같은 곳이었다. 메트로도 다니고, 기차도 다니는 그런 곳. 


무사히 센텐드레행 기차표를 끊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의 기차에 탔다. 내가 탔던 기차만 그런 건지, 헝가리 기차 시스템이 다 똑같은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역무원 아저씨께서 지나다니며 표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내 표를 확인하고 걷어가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면서, 카드와 스마트폰 하나면 다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한국과 달라 새로움을 느꼈다. 동시에, '잘 찾아 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사실, 기차여행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통해 환상을 품고 있던 터라 외국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들떠있었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첫눈에 반해, 이야기를 하염없이 나누다가 서로 잘 맞는다는 걸 직감으로 느끼고, 같이 여행을 이어간다거나 하는 그런 환상 말이다. 어렸을 때는 이러한 나의 멋진 로맨스 꿈을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난 여행 중에 우연히 외국인과 만나서 사랑에 빠질 거야.'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조금 이 환상에서 살짝은 벗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여행 중 빠지는 로맨스를 꿈꾼다. '비포 선라이즈' 영화에서 제시와 셀린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이어갔던 것처럼 기차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인연이면 더 좋고.


어찌 되었든 이번 센텐드레 기차여행은 내 옆 좌석은 수도에서 벗어나 시골로 돌아가는 거 같은 할아버지 한 분과 나의 동행인 뿐이었다. 기차 내부는 우리 셋을 제외하면 공기뿐이었다. 그렇게 초록 기차는 북적북적한 도심에서 나와, 푸른 들판과 아담한 주택가들을 지나, Szentendre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난 그 안에서 제시 없는 셀린이 되어 기차 밖을 바라보며 설렘 때문에 입가가 씰룩거리는걸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이번에 근교 여행에 자신감을 얻었으니, 다음에는 혼자 이곳저곳 기차 타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셀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황되지 않은 꿈을 간직하면서. 


제시 없는 셀린
도착한 Szentendre
달콤한 시간
첫 핫와인, 내 인생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서 참 좋다.

의도치 않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여행이었던 터라, 센텐드레도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일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곳 역시, 크리스마스를 맞아 안 그래도 귀엽고 아담한 주택가 골목골목과 상점들이 다양한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고, 길 한가운데에 있는 테라스 자리들과 대형 트리, 작은 마켓들이 줄지어 있었다. 역시 나는 여행지에서 수도파가 아니라 근교 파인 걸까? 잠시 북적거림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사람 사는 냄새나는 정겨운 동네에 들어와서 행복했다. 점심을 대충 먹고, 길거리에서 파는 핫와인을 하나 시켜 마셨고, 이때의 핫와인이 내 인생 첫 핫와인이었다. 처음 마셨을 때는, 술의 맛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 '윽,,, 맛있다고,,,? 약 맛 나는데?' 했지만 추워서 따뜻한 액체의 의존하는 마음으로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핫와인을 하나 들고선 스탠딩 테라스 자리에 서서 황홀함을 느꼈다.' 아기자기한 이곳, 나 너무 좋아!'


그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보이는 골목마다 들어가 보면서, 천천히 센텐드레 구경을 하다 보니 한국의 어느 동네와 정말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스무 살 즈음, 한참 빠져서 늘 약속을 잡을 때면 이곳에 잡았었는데 그곳은 '종로 익선동'이다. 지금은 매우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때에는 익선동이 그렇게 사람이 북적거리고 핫한 곳은 아니었기에 많이 변한 지금은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익선동의 골목이 마음에 든다. 센텐드레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작은 골목골목에도 볼거리가 많고,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 좋은 그런 곳이다. 하염없이, 걷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도 발견했다. 골목을 도장깨기 한 결과, 큰 강가와 산책로가 있었다. 부다페스트로 비유하면, 다뉴브강과 산책로가 있는 것처럼 여기도 한 강가와 걷기 좋은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기쁨을 느끼며 강가 따라 걸어 다니다가 벤치에 앉아, 영화 ost를 이것저것 들으면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곳은 헝가리에 있을 때, 한 번 다시 와야겠다.' 다짐하면서.


안타깝게도, 부다페스트의 매력이 쌓이고 쌓여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갈게, Szentendre!!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오후 4시만 넘으면 해가 지고, 금세 어두워지는 유럽의 겨울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잠깐, 산책하고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그새 낮에 봤던 그림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사방에서 노란빛이 번쩍번쩍, 외롭게 있던 대형 트리 주변에 커다란 스피커들과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밤을 즐기려 잠시 나온 듯한 주민들까지 어느새 센텐드레는 밤을 다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난 건물에 쏘고 있는 '라이트 아트'로 재밌게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들처럼 감탄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옆의 일행과 호흡을 맞추며 귀여운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젤라또를 먹으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행사를 다 보고 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시간은 9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기차가 끊기기 전에 출발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결국 다시 기차역으로 이동했지만 센텐드레에서 보낸 달콤한 시간 덕분에 후회 없는 날이었다. 


'부다페스트도 좋은데, 근교까지 내 마음에 쏙 들면 어떡하냐 말인가! 여기서 정말 살아야지, 안 되겠어!'


웃고있는 모두와 달콤한 시간
나도 이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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