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want to dance with me?
술에 대해 허물어진 내 오랜 생각
저번 글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평소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다. 늘 여행을 갈 때면 현지인이 추천해 주는 술 한 잔, 혹은 옆에서 제로콜라나 물을 마시고 사람들의 술 마신 텐션과 비슷한 텐션을 유지하였다. 혼자 여행갈 때면 더더욱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고, 특히나 여행을 갔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알코올의 알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굳이 술을 마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분위기를 위해서, 분위기따라, 오늘 힘든 일이 끝났으니까, 금요일니까 등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시고 술의 효과로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는 문화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약간은 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물론, 과음을 하는 건 몸에 해로우며 옆 사람까지 피해를 입으면 더더욱 좋지 않다는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적당한 술'을 가끔씩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마시고, 생각없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춤추고 쿨하게 헤어지는 그러한 밤의 문화도 일상에 가끔 끼어주는 '재미'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혼자 편안한 공간에서 가볍게 핫와인을 마시면서 밤을 보내는 잔잔한 행복 또한 경험했다, 이번 헝가리 여행에서.
헝가리가 주는 편안함과 안전하다는 생각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 조합들을 기반으로 해서였을까, 지금까지 지켜왔던 '혼자 여행할 때는 절대 술 마시지 않기'의 약속을 깨보았다. 하루는 재즈가 흘러나오는 곳에서 토카이 와인 한 잔, 그 재즈바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가서 새로운 공연을 보고 들으며 곁들인 포르투 와인 한 잔, 그러다 친해진 종업원의 추천으로 맛보게 된 헝가리의 센 술 발랑카까지. 어느 날은 혼자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있을 때, 핫와인과 빵 하나 사들고 잔디밭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하루 하루 다양한 공간에서, 가지각색 맛의 술을 마시다보니 깨달았다. 여태까지 난 너무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한국의 술 문화에 영향을 받았던 걸까? 아무튼 나의 오래된 관념은 아무런 연고가 없던 부다페스트에서 맞이하는 밤이 될 때마다,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Tomorrow, 내일이면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그들
하루는 헝가리에서 친해진 언니랑 같이 저녁을 먹고, '뭐할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명한 펍에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언니랑 잠깐씩 다니면서 한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장소를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린 늘 헝가리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 카페, 거리를 좋아했기에 흔히 여행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게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저녁 9시쯤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정말 친한 가족 혹은 친구들과 사교적인 모임을 하려고 온 듯한 분위기였다. 둘다 내심 기대했던 시끌벅적하고, 흥이 넘치는 분위기가 아니였다. 하지만 늘 기대했던 게 기대 이하라면, 그만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을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법. 언니와 난 맥주 한 잔씩 들고, 여행객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시선이 확 트인 곳에 자리잡았다. 엄청나게 시끄럽거나 정신없는 곳이 아니었던 덕분에, 언니랑 헝가리 생활 이야기, 꿈 이야기 등 많은 대화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흘렀을까? 흘러가는 시간에 발맞춰서 분위기도 변하는 펍의 모습에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음악도 템포가 빨라지고, 사운드도 더 커진 것 같고, 사람도 많이 드나들고 있었다.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코로나때문에 여행객들이 많이 없다고 느꼈는데 아니었다. 여행자들은 다 이곳에 모여있었다. 만약 헝가리에 혼자 잘 놀다가, 아주 가끔 나와 같은 여행객이 그리울 때는 잠시 이 펍에 들려도 좋을 듯하다.
그때였을까, 갑자기 뽀글뽀글 파마가 잘 어울렸던 장발머리를 한 여행객이 우리한테 인사를 건네며 대뜸 우린 친구라고 말하더니, 여기저기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테이블에 다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술을 마셔서 취한 게 아니라 평소 텐션 자체도 높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도 어디가서 텐션과 사교성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 절대 뒤처지는 편이 아니었는데 Tom은 남달랐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쾌활하고 성격좋은 톰 덕분에,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 연휴를 맞아 놀러온 스페인 남매 등 순식간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에게 "언제까지 부다페스트에 있을 거야?"라고 물어보면, 거짓말같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Tomorrow"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면서 "너희 내일 공항에서 만나겠다!"라고 하며 인연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여행자들이 우리 테이블을 지나친 후, 맺은 결론은 '아, 여긴 떠나기 전날 오는 곳이구나.'였다. 나와 언니를 제외하고는 정말 다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 펍의 이름을 'tomorrow pub in budapest'라고 지으면 어땠을까.
노래가 점점 흥겨워져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였을까, 톰이 갑자기 "Do you want to dance with me?" 라고 물어보며 손을 건넸다. 사실 언니랑 대화를 나눌 때부터, 노래에 맞춰서 그냥 춤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까는 춤추는 분위기보다는 서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갑자기 처음 보는 아이슬란드 톰과 춤을 추다니, 처음에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아, 나 춤 출 줄 몰라"라고 말했다. 잠깐 영화에서 한 번쯤은 봤던 거 같은 장면이 스쳤다. 톰은 내 말이 거짓말이었는지 알았을 수도 있다. "Don't be shy~"(부끄러워 하지마~)
걱정하지 말고 자기만 따라오라는 톰의 말을 믿고 자리에 나와서 톰한테 손을 맡기고, 톰이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아마 톰은 진짜 춤을 못 추는 날 보고 놀랐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웃으며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 해주면서 편안하게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도록,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음악을 따라 내 흥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통로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이름 모를 춤을 췄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의 생각보다 사람들은 서로 뭘 하든, 신경쓰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외국이라서 그랬던 걸까, 한국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었다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tom이라는 친구 한 명으로 인해서 전세계 곳곳에서 모인 우리들의 밤이 더 다채로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깊이 여운으로 남아있고, 가끔은 그 친구의 흥이 그립기도 하다. 나중에 여행을 하다가 또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손을 건네며 말걸고 싶다.
"Do you want to dance with me? Don't be shy."
내일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흥이 넘치는 그 밤,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거 같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준 톰이라는 아이슬란드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