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캐시넴(고마워요), S언니"
사람은 살면서 스쳐가는 인연이 되든, 둘도 없는 소중한 관계가 되든 결국은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돌이켜보면, 함께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매년, 매 계절마다 다른 '나'의 모습이 달랐다. 모습뿐만 아니라, 그때 좋아한 음식과 동네, 경험, 취미 생활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다. 그만큼 타인의 존재가 자아를 형성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고, 그만큼 타인의 영향이 크게 다가온다. 어느 때는, 수많은 인연을 만나는 시기가 있어 정신없이 한 계절 혹은 일 년이 지나가기도 하고, 다른 때는 잠시 웅크려 들어 사람과 멀리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후자의 상황에서 나와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계속 생각나는 그들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지금도 나는 선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꿈의 씨앗을 퍼뜨려 주는, 혹은 내 꿈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가식 없이 편안한 나를 이끌어주는 나의 사람을 찾아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나도 이 사람처럼, 좋은 것만 보여주고 맛보게 해 주고, 들려주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깊은 생각을 이끌어준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솔직히 우리는 잠시 스쳐 지났을 수도 있는 사이가 될 확률이 더 컸다. 처음에는 스냅 작가와 여행자로 만난 사이었기에, 처음부터 함께 같이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며 여행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아마 대부분 스냅 작가와 여행자의 관계가 그러지 않을까, 잠깐 만나서 사진 찍고 보정 본 보내드리고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인연이 마무리되는 그런 관계. 하지만 S언니와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곳마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 정말 잘 맞는다..!'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언니가 좋아하는 부다페스트의 공간을 데려가 줄 때마다 진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포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늘 새로운 꿈의 씨앗을 퍼뜨려주는 언니와의 대화 시간이 즐거웠고, 모험적인 성격과 솔직함이 통하는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
우리의 적당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했던 점이 아니었을까, 늘 저녁까지는 각자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보내다가 마무리할 때쯤 만나서 하루의 끝을 더 멋지게 보냈다. 성격상, 혼자 있는 시간을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언니와의 적당한 관계가 부담 없이, 좋았다. 때로는 함께하면 부담이 되는 사람, 솔직한 모습보다는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며 놀라면서, '이 사람과는 만나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반대로 S언니와 같이 함께하면 편안하고, 힘을 얻고, 꿈의 모토가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계획 없이 진행됐던 이번 헝가리 여행이 더 다채로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언니의 존재이지 않았을까! "포터야, 여기 한 번 시간 되면 가 봐~", "여기 포터가 정말 좋아할 거 같아!", "우리 여기 가볼까?" 부다페스트를 꿰뚫고 있던 언니 덕분에, 흔히 관광지 위주로 다니는 여행자가 아니라 여기서 사는 사람들처럼 같이 먹고, 보고, 듣고, 즐기는 여행자였다. 예를 들면, 수영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추천해 준 동네 수영장, 걷기를 좋아하는 날 위해 멋진 산책로를,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은 날 위해 시장에 데려가서 쌀국수를 사주는 등 감사한 일이 정말 많다.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하루는 언니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평소 오케스트라, 뮤지컬 등의 극음악을 스스로 찾아서 보러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함께 가자고 하면 흔쾌히 수긍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들이 느끼는 이 문화의 매력이 있을 테니까, 나도 그들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경험을 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재미도 있다. 아무튼, 헝가리에서 오케스트라를 볼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오히려 다음 여행지로 예정되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워낙 유명했기에, 거길 가면 한 번 가볼까 했던 마음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듣는 오케스트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헝가리에서 경험한 오케스트라는 정말 아름다웠다. 공연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오로지 공연이 어떨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지, 그 공간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하나도 없었다. 언니와 오픈 어택을 하다시피,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의 좌석이 있는 2층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세상에...'
공연장 내부를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일단, 로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고전적인 인테리어 등에 감탄을 한 상태였는데 내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중 무도회 장면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혹은 '브리저튼' 장면 중, 주인공들이 춤추는 공간 그 어디쯤 되는 곳이었다. 엄청 높은 층고에 반짝 거리는 샹들리에 조명들과 곳곳에 무늬가 새겨진 벽들 사이에서, 놀란 마음 여기저기 티 내고 있는 외국인 두 명이 자리 잡았다. 잠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여기 있는 의자들을 다 치우고 무도회장으로 변신해서 모두가 춤추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틈만 나면 빠지는 몽상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신을 차리다 보니까, 또 한 번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 공연이 만 원 밖에 안 할 수가 있어?' 그렇다. 대략 만 원을 내고 표를 구매했다. 보통은 무료 공연도 많이 열린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만 원은 이 멋진 공간을 구경할 수 있는 입장료로 내도 충분히 이견이 없을 듯했다. 한국에서는 이 무도회 느낌 나는 고전적인 공간을 볼 수 없으니까, 충분히 한국인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올 거 같다.
어느새 공연은 시작했고, 한 시간 반 정도 흘렀을까? 대략 두 시간 가까이 공연을 감상했다. 보기 전에 언니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너무 열심히, 다 들으려고 하지 말고, 눈 감고 싶으면 눈 감고 들어도 되고 편안하게 들어~" 허리 꼿꼿이 세우고 최선을 다 해 공연자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열심히 들을 내 모습을 눈치챘던 걸까. 덕분에 편안하게 마음을 비우고 연주를 감상하며 여유로운 밤을 보냈다. 공연도 공연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에 있는 헝가리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저 사람은 오늘 일 끝나고 바로 온 걸까?', '저분들은 늘 와서 이렇게 문화생활을 즐기시는 걸까?'
그러다 눈에 띈 몇 아이들이 있었다. 반대편에 산타 모자를 쓰고 온 두 남매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를 조용히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 쪽 줄에 있던 몇 남자아이들은 턱시도를 갖춰 입고 와서, 의젓하게 오케스트라를 즐기고 있었다. 문득,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문화생활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부담 없이 열려있는 부다페스트에서 사는 아이들의 미래는 정말 다채로워질 거 같았다. 지금은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자 돌림의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더 슬픈 건 꿈이 없는 사람이 많은 한국과 크게 달랐다. 다시 한번, 모두에게 열린 문화생활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가볍게 감자튀김을 곁들인 짐빔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바로 하루를 기록하였다.
'S 언니가 나한테 새로운 문화를 알려준 것처럼, 나도 다양한 세계를 접해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하나라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 쓴 일기 중, 일부-
"캐시넴, S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