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냅 촬영 일기 In Budapest
기록하는 습관
평소 어디를 갈 때마다, 무엇을 할 때마다 사진, 영상, 메모장에 기록을 해두는 편이다. 특히 여행을 할 때이면 더더욱 그 순간을 남기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깨우침을 얻었던 때는 코로나가 등장한 후였다. 갑작스러운 거리두기 등 많은 변화 속에서 이동과 인간관계에 많은 제약이 생겼고,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방 안에 있을 때, 그간 기록해 둔 모든 것을 끌어모아 정리하면서 하루하루 내 방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많은 사진과 영상이 있었음에도, '아 좀 더 기록해둘걸' 하는 끝없는 욕심도 한 편에 자리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얻은 이점 중 하나랄까, '기록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말이다. 그 영향 탓에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으로 놓치기 쉬운 소소한 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영상, 사진, 글까지 다방면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또, 이전 여행과 달리 특이점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에서 '첫 스냅사진'을 남겼다는 점이다. 사진에 담긴 따뜻한 색감과 그때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예쁜 사진 여러 장으로 끝나는 스냅이 아닌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사진'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사진의 결과물이 아니라, 찍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꽃이 좋았다.
첫 스냅사진에 담긴 이야기 모음집
#1
작가님과 국회의사당의 돔이 잘 보이는 프레임에서 잠시 멈춰,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포터님, 잠시 저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너무 높으려나?"
"네! 올라갈 수 있어요!! (어..... 생각보다 높네..!?)"
보기보다 높은 난간에 오기가 생겨서, 포기하지 않고 난간 위에 앉아보려고 아등바등 대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일하고 계시던 한 분께서 조심스레 다가와 물어보았다.
"도와줄게, 내 팔 잡고 올라갈래?"
"캐시넴(고마워요)"을 거듭 말하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그래도 못 올라갔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한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어느새 내 한쪽 팔을 잡아주고 계셨다. 그리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나를 위로 안전하게 올려주었다. "원, 투, 쓰리!"
두 분 덕분에 무사히 난간 위에서 국회의사당을 뒤로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건너편에 그 순간을 담아주고 있던 작가님의 프로정신 덕분에 유쾌한 셋의 사진도 남겼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의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히 떠올라서 웃음이 피식피식 난다.
처음 보는 외국인의 한쪽 팔이 되어준 헝가리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 사이에 껴있는 나, 작은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작가님, 네 명의 조합이 유쾌하게 담겨있는 사진이다.
굳이 이 난간을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국회의사당 돔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길가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한 인도에 그쳤을 테이다. 다행히도, 내게는 넷의 짤막한 추억이 담긴 길이 되었다.
내년 여름,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갔을 때 이 난간을 우연히 지나치는 순간이 오면 얼마나 반가울까?
혼자 피식피식 웃으면서 열심히 기록하고 있을 미래의 내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본다.
#2
나의 최애 간식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 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다뉴브 강가에 들렸다. 여기서 작가님은 줄지어 있는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푸른 강과 그림처럼 펴져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걷는 내 모습을 남겨주었다. 잠시 찍은 사진을 보는데 이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찍으려고 돌아서는 순간, 그 자리에 두 여행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방금 전 찍고 있던 나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하며 사진을 서로 남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맞아, 저 구도가 예쁘긴 하지!' 하면서 내 포즈를 따라 하는 모습이 그저 재미있었다. 작가님과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바닥 위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잠잠히 기다렸다. 한 십오여분 지났을까,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그 둘의 사진 촬영에 서서히 답답함과 놀라움이 밀려왔다. "언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같은 여행자로서,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나가야 하는 그곳을 둘이 계속해서 차지하고 있는 건 정말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둘의 열정적인 사진 퍼레이드에 감탄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앞에서 같이 추위를 녹이고 있던 빨간 모자 남자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대화에 반응해 주었다.
이 사진을 볼 때면, 생각난다. 유독 추웠던 그날과 원치 않던 사진 퍼레이드를 보여준 두 여행객, 미소로 공감해 준 빨간 모자 아저씨의 모습, 그리고 '나는 피해를 주지 않는 여행자가 되어야지.'라는 되새기던 마음까지.
#3
애정 하는 노란 2M 트램이다. 하루는 작가님과 2M 트램을 타고 저녁에 트램 드라이브를 하다가,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2M만 타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해 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 꼭 한 번 그러겠다고 이야기한 후 며칠이 흘렀을까. 점점 여기서 발을 떼야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을 즈음, 2M 트램이 생각났다. 때마침, 2M이 지나가는 곳 근처에 있었다. '오, 오늘은 2M이다.'라는 직감이 들자 노을을 바라보며 먹던 아이스크림 하나를 후다닥 먹은 다음, 2M 속 창가 여행을 즐겼다. 근데 웬일인가! 방금 전, 바라보던 노을이 점점 진해지더니 미친 듯이 아름다웠다. 트램 타야겠다는 즉흥적인 나의 생각을 따른 스스로에게 너무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연히도 다뉴브 강가 쪽에 자리가 나서, 주황빛으로 붉게 물드는 다뉴브 강가를 바라보면서 갈 수 있었다. Ed Sheeran의 Castle On The Hill 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당장 가방 속에 있는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노래를 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왜 꼭 이럴 때 배터리가 없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어느새 조심스럽게 덜컹거리는 소리와 천장에서 움직이는 쇳소리, 트램의 소리와 창 밖을 한없이 바라봤다.
노래를 들으며 그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다.
이 생각은 부다페스트로 돌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2M을 타야겠다는 즉흥적인 생각에 내 몸을 맡겼던 것처럼.
#4
이곳은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첫날 저녁, 짐을 풀고 나와서 무작정 반짝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들을 따라 발길을 향해 도착한 곳이었다. 첫날, 두꺼운 검정 패딩에 초록색 비니를 쓰고, 힙색으로 꽁꽁 소지품을 숨겨놓고, 미니 삼각대로 나 홀로 영상 찍으며 돌아다녔다. 늘 SNS로만 봐왔던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 '겨울 유럽'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낳은 동심이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을까? 연말의 유럽, 부다페스트의 밤이 너무 꿈만 같았다.
비록 사진은 낮의 모습이 담겨있지만, 이 사진을 볼 때면 늘 부다페스트 첫날밤이 떠오른다.
줄지어 있는 작은 상점들, 상점들 따라 줄지어 있는 조명들, 먹음직스럽게 생겼지만 다소 크기가 큰 음식들, 연말을 즐기러 나온 동네 사람들, 그리고 여행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던 순간 말이다.
#5
해가 질 때쯤, 작가님은 내가 좋아할 공간을 딱 데려가 주셨다. 작가님이 평소 즐겨 걷는 골목을 구경했다. 위에서 한눈에 부다페스트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고, 노을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은 곳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쉽게도 하늘에 구름이 껴서, '오늘은 노을을 보지 못하겠구나.'하고 여유로웠던 골목에서 나와 여행자들 사이로 들어왔다. 그때, 매번 부다페스트 여행을 검색할 때면 나오던 세 개의 아치형 구조의 그 유명한 포토존을 드디어 실물로 영접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때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알던 것과 다르게 크리스마트 느낌을 내기 위해 반짝반짝 전구를 장식해서였을까 '아, 정말 예쁘다'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남들이 흔히 알고 있던 어부의 요새가 아닌 내게는 조명이 달린 귀여운 모습으로 기억되어서 좋았다.
잠시 따뜻하게 몸을 녹이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본 순간, '이게 웬일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구름 뒤로 가려져 보지 못했던 노을이 진하게 지고 있었다. 심지어 핑크빛으로 말이다. 서서히 지던 분홍색 하늘은 진한 파스텔 색감의 핑크색이 되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의 모습과 노을을 담아준 작가님께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사진을 볼 때면, 좋아하는 하늘을 보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몸과 표정으로 표현하며 즐기고 있던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6
여행이 끝나고 나서, 어부의 요새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볼 때면 진한 행복이 묻어져 있는 나의 모든 모습에 매번 놀란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여행 성수기에 왔을 때, 이렇게 여유롭게 촬영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여러 상황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 버리고, 날 믿고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딜 가도, 여행객들을 보기 드물었다. 비교적 헝가리와 가까운 서양권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꽤 봤어도, 동양인은 실제로 별로 보지 못했다. 부다페스트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부의 요새에서 야경을 내려다보기 위해 꼭 들르는 곳이지 않을까, 솔직히 이곳 야경은 정말 가치 있다고 느낀다.
옛날에 베트남 여행을 했을 때, 야경이 유명하다는 정보만 보고, 동생을 데리고 고가의 입장료를 내고 고층 건물 꼭대기에 올라갔던 적이 있다. 한국에 와서 알았던 사실인데 알고 보니 롯데 건물이었고,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롯데타워에 올라가 보지도 않았는데 베트남에서 비슷한 가격을 내고 감흥 없이 봤던 야경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항상 여행을 할 때마다 보러 간 야경은 다 이런 식이었다. 어디 높이 올라가서, 반짝거리는 고층 빌딩들을 한눈에 바라보는 곳 말이다. 하지만 세계에는 보다 더 멋진 가지각색의 야경을 가진 곳이 많았다. 그중 부다페스트는 아직도 신기한 저 국회의사당 건물과 의사당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물든 다뉴브 강가, 번쩍번쩍한 고층 빌딩이 아닌 고전적인 건물들을 빛내는 야경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이곳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씩 알 거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야경이라고 해서 무조건 번쩍 거리는 고층 빌딩을 모아둔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구나.'
아직 못 밟은 땅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 땅들의 야경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 기대된다.
#7
사람들은 사진을 보면서 '와 진짜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작가님이 떠오른다. 트램이 다가오는지 확인하며 도로 가운데 작은 인도 한편에서 열정적으로 찍어주셨던 언니의 모습, 그리고 트램이 올 때면 "언니 트램 와요!"라고 외치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촬영하기를 반복했던 필름이 담겨있는 사진이다. 맨 처음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밤의 국회의사당을 처음 만났을 때, '와. 여기는 밤마다 와서 산책해야지.'라고 다짐하고 숙소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작심삼일도 못 미치고, 하루 보고 언니와 이곳에 다시 왔을 때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아, 진짜 여기 또 와서 산책할 거야.' 결국, 이 다짐은 지키지 못한 채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또 들렀다.
총 3번 들렸던 이 장소 중, 언제가 제일 좋았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마지막으로 언니가 다시 갔을 때'라고 바로 말할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그때는 나의 사진이 아니라, 언니의 사진을 남겨준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놀랐다. 비록 일로서 국회의사당을 보러 이 장소에 매번 와야 했던 거지만, 언니와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별로 없었다는 점 말이다. 한 편으로는 언니의 첫 사진을 내가 남겨드려서 기뻤지만, 핸드폰 카메라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카메라를 들고 찍으려니까 걱정되었다. '이왕 찍는 거, 흔들리지 않게 잘 찍어드리고 싶은데..' 하지만 핸드폰은 어떻게든 많이 찍으면 그중 하나는 잘 나온 게 있지만 카메라는 초점이 안 맞으면 우선 탈락이 되니까 확실히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언니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 장 있었고, 그 사진이 언니의 새로운 프로필 사진이 되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역시 언니는 '부다페스트와 잘 어울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