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와 나팔레온 케이크 만들기
우리는 연말마다 나팔레온 케이크를 만들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우린 어느 순간 엄마와 딸처럼 케이크를 만들며 1월 1일의 첫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해외에서 처음 보는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건 참 이색적인 일이다. 연말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그 나라마다, 가족마다 연말연시를 보내는 방법을 옆에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유독 옆동네, 옆 나라의 전통을 경험하는 걸 재밌어하는 이유는 아마 연말연시에 무미건조한 우리 집의 문화 덕분이지 않을까. 역시나 올해도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다 같이 모여 만둣국을 먹으며 "이제 2022년이야!"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하루를 흘러 보냈을 테이다. 예상과 그대로, 한국에 있는 동생이 보낸 사진을 보니 혼자 음식을 해 먹고, 홀로 연말연시를 보내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념일에 별다른 감흥이 없던 집에서 자랐지만 어디에서나 유별난 가족 중 돌연변이인 나에게는 연말연시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대단한 걸 해내고 싶어 했다. 그중에서 매년 지키고 있는 나만의 전통이 있다면, 양초를 켜고 제야의 종소리 방송을 틀어놓은 후, 한 해 동안 작성한 다이어리를 쭉 읽어보며 일 년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곧 맞이할 새로운 해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종소리를 듣고, 다이어리를 닫고, 잠에 든다. 아직도 생생하다. 2020년이 지나고 2021년을 맞이할 때, 썼던 하나의 버킷리스트 '2021년을 돌이켜봤을 때, 내가 이걸 해냈다고? 할 만한 것을 이루게 해 주세요.'라고 잠든 순간을.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 건가, 2021년을 돌이켜보니 나는 홀로 낯선 땅 위에서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 마지막 장을 우크라이나의 한 가정집에서 마마와 케이크를 만들며 그리고 있었다.
M네 가정은 매년 마지막 하루 전 날, 나팔레온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다음 날 새해의 시작이 열리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나팔레온을 꺼내서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소원을 빈다. 이번 새해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쌓아왔던 연말의 작은 전통을 행했는데 여기서 조금 특별해진 건 바로 저 먼 땅, 한국에서 온 내가 함께했던 것이다.
마마가 부엌에서 반죽을 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케이크를 만드시는지 몰랐다. 나에게 케이크를 만든다는 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물론 옛날에 케이크 시트에 취향껏 토핑을 뿌리며 데코한 경험은 있지만, 케이크 만들기의 경험은 이게 전부이다. 매장에서 완성된 케이크만 먹었던 내게는 정말 이색적인 모습이었고, 이 제빵을 매년 하신다는 점에 한 번 더 놀랐다. 옆에서 가만히 보며 있다가, 조심스럽게 "마마, 제가 도와드릴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라고 여쭤보았고, 바로 보조 제빵사로 발탁되었다. 반죽은 이미 마마께서 다 해주신 덕분에 반죽을 망치는 일은 없었고, 펼쳐진 반죽을 하나씩 쌓아 올려가며 나팔레온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마마만의 노하우가 들어간 고소한 빵가루를 살살 묻혀가며 케이크를 완성해 나갔다. 사실 마마께서 하셨으면 십 분이면 충분히 다 끝냈을 수도 있지만 마마는 답답할 수도 있는 나의 엉거주춤한 손과 어설픈 자세로 임하는 모습을 귀엽게 봐주시면서 옆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도와주셨다. '글라스!!(좋아!!)'라는 연이은 칭찬과 함께 새로운 가정에서 새로운 연말 전통을 경험하였다.
여행이 끝날 때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마마는 유치원 선생님이셨다. 그래서였을까, 한 번도 이러한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보지 않았던 나를 보조 제빵사로 잘 이끌어주셨던 노하우가 유치원에서 만난 작은 아이들로부터 쌓아오셨던 침착함과 사랑이 아닐까, 아무튼 나의 첫 케이크 선생님에게 전수받는 나팔레온 케이크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무사히 마쳤다. 이 케이크의 맛은 어떨지, 얼른 1월 1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냉장고에 내 손으로 직접 넣고,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칭찬을 아낌없이 부어주셨던 마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글라스, 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