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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늘 '따뜻함 한 잔'으로 시작하지

유독 따뜻했던 그날의 아침

by 김혜미
은은한 햇살 아래, '따뜻함 한 잔'이 완성되어 내 앞에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나의 아침은 늘 따뜻함 한 잔으로 시작되었다. 눈이 떠지자마자, 부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면 매번 마마와 파파가 차를 마시고 계셨다. 부모님께서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아직 눈곱도 못 뗀 나를 진한 포옹으로 반겨주셨다. 잠시 따뜻한 물 한 잔 마신 후, 화장실에 들렸다가 다시 부엌에 들어서면 마마의 따뜻한 말이 들려왔다. "혜미~티 오얼 커피?" 아침에 일어나 홀로 밥을 챙겨 먹는 게 아니라 누군가 챙겨준다는 것에 대한 따뜻함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마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이 참 듣기 좋았다. 첫날 아침 마셨던 차의 따뜻함에 빠져, 그다음 날도 망설임 없이 커피 대신 차를 선택했다. 물론 차를 마시고, 또 커피도 마셨지만 말이다. 여기서 아침마다 맞이하는 차는 좀 신선했다. 보통 집에서 차를 마실 때는 쌓여있는 티백 중 하나 골라서 뜨거운 물에 퐁당 넣어두고, 잠깐만 넣었다 빼야지 하다가 결국은 향도, 물 색도 진해져 국물 마시듯 호로록 원샷하기 바빴다. 그럼에도 찻잔은 예뻐야 한다며, 항상 차의 맛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예쁜, 눈으로 보기에 좋은 아기자기한 혹은 고풍스러운 찻잔만 들여놓았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마샤가 차를 내려주던 그 순간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그려진다. 밑이 둥근 넓은 티팟이 아닌 누르는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티팟과 자동으로 알아서 시간이 흐르면 찻잎이 걸러지고, 티백으로부터 물이 우러나올 수 있도록 가만히 티백을 넣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여러 찻잎을 넣고 직접 손잡이를 위아래로 눌러 차가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벼운 펌프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보리차의 색깔이 우러져 나오고, 그때가 되면 깔끔한 유리컵을 꺼내 든다. 안이 훤히 잘 보이는 컵 안에 노란 레몬 슬라이스를 한 조각씩 넣어준다. 준비가 다 되면 이제 공을 들여 우린 차를 레몬이 둥둥 뜰 때까지 부어준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은은한 햇살 아래, 따뜻함 한 잔이 완성되어 내 자리 앞에 살포시 놓인다. 이렇게 늘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아침을 시작했다. 유독 더 따뜻했던 그 아침의 순간들이 좋았어서, 떠나는 아침까지도 이 생각을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한국 가면 아침에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래, 꼭!" 나중에 한국에 도착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다시금 그때의 따뜻함 한 잔으로 시작한 하루는 드물다.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다. 나중에, 다시 M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침의 따뜻함 한 잔, 두 잔, 세 잔으로 따뜻한 하루를 다시 맞이하고 싶다.


늘 부엌에서 날 안아주며 하루를 열어준 마마와 파파
은은한 햇살 아래, 따뜻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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