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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오늘은 오데사 시내로!

까르르까르르 두 소녀의 오데사 겨울여행

by 김혜미
오늘만큼은 M이 가이드, 난 여행객

12월 31일, 이날 아침도 따뜻함 한 잔을 한가로이 만끽하고 집에서 벗어나 오데사 시내로 향했다. 도로에 나서자마자 버스가 오고있다는 말에, 무작정 M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따라 뛰다보니 얼떨결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당연히 한국처럼 버스 알림판이 함께 놓인 버스 정류장은 기대할 수도 없을뿐더러, 작은 봉고차 안은 누르는 벨이나 알림 방송 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잠깐 아찔한 생각이 스쳤다. '만약에 내가 정말 우크라이나를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혼자 여행 왔다면..?' 물론, 혼자 낯선 땅에 떨어지면 생존본능으로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여행을 잘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테이지만 그 과정에서의 고생이 뻔했다. 게다가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나라에서, 내가 내뱉는 영어는 입으로 뱉는 족족 다시 내게 튕겨져 나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날만큼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오데사 여행을 아주 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게 바로 현지인 친구 찬스랄까, M덕분에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안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 놓고, M을 따라다니며 감탄하는 것에만 성실히 임할 수 있었다. '오늘만큼은 몸도 마음도 편안한 걱정없는 여행자!'


분명히 벨소리도, 정류장 간판도 없는 듯한데 사람들은 정말 잘 오르고, 내렸다. 작은 봉고차를 타고, 잠시 이들과 어디 투어라도 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30분 쯔음 달렸을까? 시내에 도착했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아서인지 꽤나 한산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 걸음, 두 걸음씩 발을 옮길 때마다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편하게 우리만의 여행을 여유롭게 시작했다. '오데사는 어떤 곳일까?' 나름 한동안 공항과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 이번에 나온 나들이가 반갑게 느껴졌다. 다시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랄까. 나는 M이 평소 좋아하던 장소를 따라다니며 M의 취향도 알아가고, 오데사 도심의 모습도 들여다보고, 길거리에 유독 많이 다니던 잘생긴 군인들과 현지인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잠시 박물관의 한 공간에 들어온 듯한 평범한 건물 내 통로를, M이 좋아하는 알록달록하며 아기자기한 골목 사이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M친구가 일하는 카페에도 잠시 들려 인사도 나누며, 추운 겨울 쌀쌀한 날씨였지만 작은 햇살이 우리를 지켜주던 하늘 아래서 설레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굉장히 신이 났던 일일가이드 masha와 여행자 potter
여기 미술관 아니야? 정말로?
이렇게 사진을 찍다가 안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와 놀랐다지
혼여행을 떠나면, 모든 걸 혼자해야 해서 무거운 짐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가벼워서 날라다녀!


얼떨결에 우크라이나 대학생들과 인터뷰

요리조리 돌아다니다가 회전목마 앞에서 함께 사진을 남기고 싶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누구한테 부탁하면 좋을까 조심스레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쯤, 그때 우크라이나 두 대학생이 갑자기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저,, 혹시 괜찮다면 우리가 학교 과제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인터뷰 좀 참여해줄 수 있어? 주제는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새해나 크리스마스에 관한 거야." 갑작스레 마주한 상황에 당황함을 느낄 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아주 쿨하게 "당연하지!"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였던 그 둘이 잠시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현실을 맞닿뜨렸다. '야,, 너 영어는 어떻게 하려고,,?' 잠깐 이 생각이 스치자마자,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내가 떠오르는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연말 분위기의 차이, 즐겨먹는 음식 등에 대해서 오합지졸로 대답을 하다 보니 인터뷰가 끝나 있었다. 나의 답변이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무리 인사를 나누었을 때, 정말 밝은 미소로 고맙다고 이야기해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 '교수님, 부디 그들에게 A+를 주세요' 새해 전 날에도 과제를 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나와 같은 외국인들을 찾아 나선 그들도 멋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회전목마 사진을 남겨달라고 할 우리의 작전을 순식간에 까먹고,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우리 사진!!!"


'외국에서 새로운 친구 과제 도와주기'


3번째 크리스마스 마켓

연말에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따로 계획을 안 세워도 나라별 크리스마스 마켓을 만날 수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얼떨결에 헝가리를 시작으로 세르비아, 우크라이나까지 3국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원 없이 즐겼다. 3국의 마켓들은 묘하게 닮은 듯하면서도 분위기가 주는 느낌은 달랐다. 헝가리는 3국 중 가장 규모가 컸으며 그만큼도 사람들도 북적거리는 딱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모습이었다. 이어서 간 세르비아에서는 우선 시끌벅적한 악기 소리와 다소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얼른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베오그라드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오른다. 반면, 잠깐만 나와 다른 도시인 노비사드에서 만난 마켓은 차분하며 잔잔하여 헝가리 센텐드레의 마켓을 연상케 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국 아파트 단지에서 열리는 작은 야시장 같다고 할까, 주위에 미니바이킹 대신 회전목마와 아이들이 좋아할 LED가 장착된 풍선, 길거리에 놓인 작은 간이 상점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느낀 분위기는 친근함이었다. 잠시 할머니 댁에 와서, 아파트 야시장에 놀러 나온 기분이 들었다. 항상 파는 음식은 어딜 가나 비슷하게 파는 듯 보였고, 특히 핫와인은 3국 공통으로 만났다. 저번 핫와인의 추억이 너무 진했기에 이번에도 한 잔씩 사들고,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는 오데사 도심에 서 있었다. 저 앞에서 준비하는 공연의 노랫소리에 맞춰 몇 번 흥얼거리다 다시 집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위해, 반가웠던 3번째 크리스마스 마켓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크리스마스 마켓, 이제 원 없이 즐겼다고 하려 했으나, 오히려 다른 나라들의 분위기가 더 궁금해졌다. 하는 수 없지, 앞으로 연말마다 곳곳을 다니며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위기는 어떤 지, 어떤 나라인지 알아가는 여행을 즐겨봐야겠다.


나의 3번째 크리스마스 마켓
핫와인 사장님도 같이 한 컷!
다음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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