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방향이라니, 우리는 돈이 없는데?

by 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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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빨리 빨리’가 기본인 우리는 무조건 '빠른 실행(Execution Speed)'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CB Insight에서 정리한 스타트업 실패 이유 20가지 중, 압도적인 1위(42%)는 바로 시장 니즈가 없는 비즈니스 모델(No market need)'이었습니다. 현금 고갈이나 팀 문제보다 훨씬 높은 수치죠. 실패는 실행 속도가 늦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집착해야 할 '문제'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시장 니즈가 없는 비지니스 모델, No market need, 42%

현금의 고갈, Ran out of cash, 29%

팀구성 실패, Not the tight team, 23%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것, Get outcompeted, 19%

가격 문제, Pricing / cost issues, 18%


글로벌 생산성 도구의 아이콘이 된 노션(Notion)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노션은 2016년 중반, 사실상 '죽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2년간 제품을 완전히 갈아엎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창업자 이반 자오가 스스로 인정했 듯, 첫 번째 실패 이유는 "세상이 실제로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매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는 대신, '툴이 아니라 생각의 도구'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집착하며 제품을 재설계했습니다. 이 실패의 원인을 올바른 문제에 대한 '집착'으로 뒤집은 끝에, 노션은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금융 슈퍼앱, 토스(Toss)의 성장 배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토스는 단순한 P2P 송금 앱으로 시작했지만, '송금의 불편함 제거'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수년 동안 집착했습니다. 금융 규제가 촘촘한 한국 시장 환경에서,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원칙을 흐트러트리거나 조급함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토스는 중간에 무너졌을 겁니다. 그들은 불편함 해소라는 '방향'에 집착했고, 느려도 끈기 있게 규제와 사용성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조급하지 않은 올바른 집착이 있었기에, 결국 토스는 단순 송금 앱을 넘어 금융 슈퍼앱으로 확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회사는 늘 돈이 없습니다. 아무리 시도하고 싶어도 돈이 바닥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나가 현금을 소진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성장하려면 올바른 문제와 방향에 집착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노션과 토스처럼, 스타트업을 살리는 건 '올바른 방향을 향한 집착'입니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집착이야말로 제한적인 현금을 유용하게 만들고, 결국 진짜 성장을 이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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