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클럽 운영일지 - 2
한 동안 저 질문에 꽂혀 있었다. '쓰는사람'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결이 주는 힘을 느끼다 보니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싶어졌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아리송한 단어. 분명 온기가 느껴지는 단어인데 그 따스함의 불씨는 과연 어디에서 당겨진 걸까?
처음부터 저 질문에 꽂힌 건 아니다. 우리 글모임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먼저였다. 그 질문이 꼬리를 물고 물더니 결국 ‘비슷한 결이란 게 뭘까?’라는 질문에 닿았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우리를 관통하는 공통의 결은 과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모임에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여기서 이미 굵직한 공통의 결은 존재한다. ‘쓰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자아 혹은 삶에 관한 선명한 의지이자 바람인 만큼 그 바람에 실려 이 모임에 닿은 거라면, 우리는 이미 강력한 결에 휩쓸린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 커다란 결 안에는 잔잔하고 고요한 결이 사이좋게 엉켜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더 알고 싶은 마음, 물음표를 제대로 정의하고 싶은 마음, 깨닫고 경험한 걸 나누고 싶은 마음, 존재하지 않는 걸 살아있게 하고 싶은 마음. 이만큼 씀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글만으로도 손을 잡고, 깍지를 껴고, 부둥켜 안으면서 아주 굵고 단단한 결을 이뤄간다.
그러니 따뜻할 수밖에. 누구 하나 춥다고 징징거려도 사방에 진심이 있으니 온기를 잃을 일이 없다. 다들 춥다는 사람 곁에 모여들어 한 문장씩 거든다. 그가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외투 같은, 담요 같은,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문장을 슬쩍 적어두고 간다. 고요하지만 묵직한 다정함. 그 다정한 문장들은 지나가는 다른 문우의 진심마저 더 뜨겁게 데우는 장작 역할을 한다. 그렇게 활활. 식을 줄 모르는 우리의 온기는 새로 온 누군가를 데우고 또 데우고 데우면서 결이라는 것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어쩌면 불씨는 이렇게 크고 작게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일 년 넘게 지켜보았다.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처음엔 내가 손수 장작을 나르고 성냥불을 켜는 산장지기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전혀 아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아늑한 산장을 지었고, 장작을 나르고, 부족하면 서로에게 건네고, 불씨가 꺼진 집에 찾아가 친히 등불을 들고 기다려준다. 그가 꺼진 불을 다시 붙일 동안 옆에서 체온으로 온기를 전한다.
묵직한 다정함과 묵묵한 기다림. 그것이 어쩌면 우리 쓰는사람을 관통하는 공통의 결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기 위해 모였다는 굵은 결은 바로 드러나는 결이라면, 속 안에는 다정하면서 기다릴 줄도 아는 공통의 결이 숨어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의 결을 알아보고 자연스레 모인 게 아닐까 짐작한다.
지난 9월, 글친구들과 함께한 일주년 스페셜데이가 떠오른다. 그날 우리는 각자 무엇을 쓰고 싶은 사람인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세계’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대답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사람’이라는 그룹으로서 말한 바램이었다. 그리고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답을 하고 싶다.
다정함과 기다림을 아는 모두가 이곳에서 각자의 온화한 세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왜 쓰는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쓰고 싶다.’는 굵은 의지로 모인 우리가 씀으로써 세계를 이뤘으면 좋겠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세계, 폭포의 굉음이 모든 소리를 삼키는 세계, 푸른 초원에 하얀 들꽃이 만개한 세계,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공원이 있는 세계. 그 어떤 세계든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 놀러 갔을 때 ‘여기 또한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할 수 있기를! 나의 세계를 사랑할 줄 알고, 너의 세계도 사랑할 줄 아는 다정한 문우들이 모여 느슨히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래본다.
이제 나는 산장지기가 아니라, 묵직하고 묵묵한 우리의 결이 지금의 방향 그대로 흘러가도록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힘쓸 생각이다. 이 책임에 충실하는 것이 올해 나의 또 다른 결이 되지 않을까. 한동안은 ‘안식’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쓰는 사람들이 안전히 쉬어갈 지금의 터를 지키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