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사랑은 기꺼이 - 1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by 헤이민 HEYMIN



그래서 왜 사랑한다는데?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한단 말인가.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냔 말이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도 제목은 계속 난제였다. 대신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질문을 바꿔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는가'라고 묻는 게 맞지 않을까? 왜냐고? 나에게 사랑은 마음먹는 일이니까. 의지, 약속, 결심이니까.


장장 한 권의 책을 채운 남주(남자주인공)와 클로이의 사랑. 그걸 달리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한 남녀가 그 '결심'을 저버린 찬란한 비극의 역사라고. 이 문장에서 핵심은 '사랑'이란 단어에 있지 않다. '약속'과 '결심'에 있지. 조금 진부하지만 잠깐 사전적 정의를 훑겠다.


약속 :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결심 :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또는 그런 마음.


나에게 사랑은 내가 당신을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사랑하겠다 약속하는 일이다. 그 약속을 어떤 시련이 있어도 기어코 지켜가겠다는 굳은 의지와 믿음이다. 기어코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 기꺼이 너를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 아닐까? 기꺼이, 끝끝내, 어쨌든 널 위해 하겠다는 그 마음 말이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사랑은 기꺼이'라는 나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보통이형이 무려 스물다섯에 썼다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발견한 3가지 장면을 꺼낸다. 남주와 클로이의 역사가 저물기 전, 찬란히 꽃 피운 시기에 행한 '기꺼이'를 살펴보자.




첫 번째. 기꺼이 척(거짓말) 이어가기


p.46-48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랬다고 해서 클로이가 그것 때문에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묘하게도 그녀는 내가 초콜릿을 먹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자 실망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 어쨌든 그녀는 곧바로 초콜릿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초콜릿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니, 알레르기도 있는 인간이 초콜릿을 먹겠단다.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남주는 클로이의 애정을 조금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굉장히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론 꽤나 낭만적이다. 우리가 나쁜 짓이라고 배운 거짓말의 이유가 '사랑'이라는 점은 몹시 아이러니하다. 사랑해서 기꺼이 하고 마는 거짓말이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남주의 거짓말이 어느 날 갑작스레 완벽한 거짓이라 들통나는 순간, 그건 곧 이별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발각되었기 때문에 이별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감출 의지가 없어졌으므로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다. 잘 보이고 싶을 만큼 '척' 하면서 사랑을 지키던 초심이 사라진, 의지 박약한, 심신 미약 상태에 접어든 거나 마찬가지.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진실'된 사랑 안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어여쁜 거짓말과 척이 기꺼이 수반되기도 한다. 때로는 하얀 거짓말이 따라줘야 사랑도 지속되는 게 아닐까. 물론, 돼도 않는 거짓말은 절대 안 되겠지만.




두 번째. 기꺼이 낭만적 언어 선택하기


p.114-115

아니야, 나의 의미는 결코 ‘ㅅ-ㅏ-ㄹ-ㅏ-ㅇ’을 타고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다. 다른 운송수단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이전부터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이만큼 과중한 피로를 느낀 건 사실, 이 단어가 삶에 있어 너무도 귀하고 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낙 소비되는 탓에 익숙을 넘어 진부한 어휘가 되고 말았다. 남주도 그런 이유로 ‘사랑한다’는 고백이 클로이에게 너무 뻔해지는 꼴이 아쉬웠을 것이다. 본인의 애틋한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신선하게 배송하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남주가 클로이에게 갖는 감정은 이 순간 이 시절 밖에 없는 고유한 것이기에 어쩌면 유일무이한 절절한 감정에 ‘사랑’이라 진부한 이름을 붙이는 건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그가 ‘마시멜로’를 고른 건 신의 한 수다. 우선 감정어휘가 아닌 물성을 가진 사물어휘를 가져왔다는 것이 킬링포인트다. 마시멜로라는 어휘가 가진 ‘물성’은 대부분 먹어보고 만져본 경험에 의해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나이쓰 하다. 혹여나 남주가 분식러버여서 일주일에 순대를 3번 이상 먹을 정도로 좋아한 탓에 ‘나는 너를 순대해.’라고 한다면 어떨까. 물론, 상황에 따라 위트 있는 고백으로 승화될 수도 있지만… 글쎄? 나는 마시멜로 한다고 말해주는 남자에게 백이면 백 마음이 기울 거 같다. 똑같이 폭신하고 몰랑한 물성을 가진 어휘일지라도 각각의 어휘가 가진 감각, 감도, 연상에 따라 낭만지수는 크게 차이 난다. 그러니 중요하다. 사랑은 '기꺼이 낭만적 언어를 고르는 일'을 수반한다. 그런 면에서 머릿속 언어사전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사랑이 유리하지 않을까? 물론 나의 뇌피셜이지만.




세 번째. 기꺼이 너라는 세계에 뛰어들기


p.140-141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움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그리고 어쩌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랑을 느꼈다. 고아에게 고아라고 일깨워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라는 건 어떤 사회, 영역, 범주를 뜻한다. 달랑 몸 하나 서 있다고 그걸 세계라 부를 순 없다. 인간 하나 서 있을 때, 그 존재를 이루는 육체와 정신 같은 요소의 총체를 이름 붙일 때 '세계'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서로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건 서로의 존재에 제대로 얽혀 보겠다는, 서로가 살아온 그간의 삶에 뛰어들겠다는 다짐이다. 이건 마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시는 그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묘사한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랑은 기꺼이 상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다이빙하겠다는 마음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 경험을 비추어 감상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도 절대 내 멋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갖고, 일생을 기꺼이 안아주는 태도가 사랑이다.


환대하는 마음. 그것이 서로에게 진정으로 닿을 때 사랑은 스파크를 튀며 서로의 자존감에 불을 지핀다. 내가 진짜 살아있구나 하는 감각이 활활 타오르면 그 불이 서서히 꺼지더라도 잔불로 사랑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대가 한 때 나를 살린 사람이니까,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 사람이니까.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껏 몇십 년을 달리 살아온 서로의 궤적을 그대로 환대하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혹여나 연인에게 박해진 마음이 있다면 다시 넓혀 기꺼이 안아보자. 손님을 마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환대해보자. 그런 마음가짐을 지킬 줄 알아야 사랑도 오래가지 않을까?




(2편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