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늘 늦게 온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것도, 가장 아파하던 순간에.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 ‘때’를 알지 못해 괴로울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때를 미리 알고 있다 해도 괴롭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내리는 비는 다 맞아야 한다.
우산을 쓰든, 우비를 입든, 맨몸으로 맞든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비를 맞으며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빠가 떠난 후, 우리 세 모녀는 위태로웠다.
불안을 감춰보려 애썼지만
여기저기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건 모래성에 불과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약했고, 어렸고, 두려웠다.
서로를 위로하려 했지만 미숙했고
그 상처는 결국 곪아버렸다.
지금은 그 상처를 앓아야 할 때다.
온전히 비를 맞듯, 아파야 하는 시간.
이것은 벌이 아니라
피해왔던 것들을 마주하는 과정일 뿐이다.
엄마의 불안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도 안 편하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던 엄마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내 마음을 알고 있어서인지,
엄마는 편히 눕지도, 앉지도, 잠들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무력함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엄마는 잠들지 못했고
나 역시 제대로 숨 쉴 수 없었다.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불안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버티고 있었다.
“주님, 제발… 엄마를 조금만 편안하게 해 주세요.”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늘 하루만,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결국 무너졌다.
엄마는 나를 매 순간 무너뜨렸다.
내가 겨우 힘을 끌어모아 일어서려 하면
다시 주저앉게 만들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쏟고 있었다.
시간도, 감정도, 체력도.
그런데도 엄마에게는 늘 부족했다.
숨이 막혔다.
정말로, 숨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일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참아보려고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엄마에게 울면서 화를 냈다.
엄마, 정말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한 번에 쏟아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안해...
그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화를 낸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온몸이 젖도록 비를 맞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도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엄마는 나뿐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숨이 막혀도,
무너져도,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날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안다.
우리는 서로를 가여워했고,
사랑했지만
끝내 서툴렀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 시간은
피할 수 없는 비였고
결국 지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비는,
결국 그친다.
그때까지는
그저
맞고 있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