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엄마다운 정리
우리 엄마는 물욕이 많은 사람이었다.
옷과 신발, 가방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싼 티 나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을 참 잘 골라냈다.
그래서 엄마가 고른 것들은 좀처럼 촌스럽지 않았다.
어지간한 멋쟁이였다.
여행을 가면 매일 다른 옷을 입겠다며 코디를 해 챙겨 왔고,
그래서 캐리어는 늘 미어터졌다.
외할머니가 “사람은 입성이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는데,
엄마는 그 말에 꼭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손때 묻은 가방,
북해도 여행 때 입었던 토끼털 점퍼,
그리고 꼭 내게 주고 싶어 했다던 손목시계까지.
엄마는 물건을 깔끔하게 쓰고, 고른 것들만 남겨 나에게 주고 떠났다.
엄마의 점퍼를 입고 가방을 들면
아직도 엄마가 내 곁에 서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엄마의 물욕은 나를 애먹이기도 했다.
6개월 남짓 머물렀던 방의 작은 냉장고는 먹지 않은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손도 대지 않은 레몬청과 마늘장아찌가 다용도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찬장 속 이름 모를 양념들은 뚜껑도 열지 않은 새것이 더 많았다.
압권은 화분이었다.
기력이 있을 때, 엄마는 나와 주말마다 화원 나들이를 가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하나둘 사 모은 화분들은 엄마의 자랑이었고,
어쩌면 삶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스피스에 입원한 뒤, 모조리 말라버린 화분들을 정리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마른 식물을 뽑아내고 흙을 쏟아내니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세 개로도 부족했다.
무거운 토분을 옮기며 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엄마는 탁월한 안목만큼이나 맥시멀리스트였다.
버리지 못한 물건들은
어쩌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고 싶어서,
이 삶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서 붙잡아 두었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고른 것들만 곁에 두고
엄마가 쌓아두었던 것들은 조금씩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엄마다운 정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