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날의 레시피
엄마 이야기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예전 글이다.
불안하던 시절, 나를 붙잡아주던 계란밥.
루틴은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다.
싫증을 잘 내는 내가 유일하게
루틴을 고집하는 것이 음식이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은
번지점프대에 올라서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새로 추가된 나의 음식 루틴은 계란밥이다.
재료는 계란, 밥, 간장과 참기름, 그리고 김이 전부다.
백수가 되면서 시작된 이 루틴은 속을 든든히 채워
불안을 가라앉힌다. 누구나 아는 뻔한 맛이라
생각하겠지만 결단코 아니다.
나의 계란밥 레시피는 이렇다.
코팅이 잘된 프라이팬을 센 불에 달군다.
달걀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팬을 설거지를 하다
성질이 고약해지고 싶지 않다면 이 점을 유념하길.
그다음 식용유를 팬에 두세 바퀴 두른 다음
골고루 퍼지게 돌려주고 손바닥이 따땃해질 즈음
계란 두 개를 깨뜨려 노른자를 톡톡 두드려 깬다.
타다닥 계란이 익는 동안 분주히 참기름과 간장을 꺼내고 널찍한 그릇을 준비한다.
계란을 단번에 착 뒤집으면 나를 위해 대단한 요리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불을 끄고 고슬고슬 밥을 그릇에 담는다.
조금 많아도, 조금 적은 듯해도 괜찮다.
이제 노릇한 계란을 밥 위에 얹었다면
준비가 거의 끝나간다.
간장 두 스푼(계량은 내 맘대로)에
참기름도 같은 양으로 아주 넉넉히 뿌려준다.
이때 계란 위로 퍼지는 참기름의 꼬순내는
맹세컨대 식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마법의 향수다. 이 순간만큼은 트러플 오일 부럽지 않다.
마지막으로 도시락 파래김 하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의 계란밥이 자취생의 음식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믿어보시라,
이 파래김이 계란밥을 완성시킨다.
만찬 준비가 끝났다면 이것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계란밥을 골고루 비벼주고(이때도 참기름의 윤활유 역할은 더할 나위 없다) 적당히 비벼졌을 때쯤 김 한 장을 올려서 숟가락으로 반을 뚝 가른다.
한꺼번에 넣고 비비면 축축함에 실망할 수 있으니
한 장씩 넣어 먹는 것이 좋다.
바삭함이 살아있는 김과 계란밥을 한 숟갈 입에 넣는 순간, 완벽한 슴슴함이 느껴진다.
담백하고 따뜻하며 든든한 위로의 맛.
종일 속이 편안한 나의 계란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