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에 남은 기다림

줄어드는 것들에 대하여

by 오레오레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도시락을 싸 가던 시절,

날마다 새롭던 내 반찬을 친구들은 부러워했고

그건 엄마의 기쁨이었다.

다른 집안일은 귀찮아하던 엄마가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해 요리를 할 때면

눈이 반짝였다.

타고난 나의 ‘먹을 복’은

독립과 함께 끝이 났다.

자취를 하며 팍팍한 서울살이에 마음이 고달플 때,

엄마가 보내준 멸치볶음과 씀바귀무침,

소고기 볶음 고추장은

때로 눈물겨운 위로가 되어주었다.

췌장암과 지독했던 항암이

엄마의 입맛을 빼앗아갔지만

손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땐 누룽지에 김치로 끼니를 때우던 엄마는

내가 온다 하면

어김없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두세 숟가락 겨우 드시던 엄마가

나와 있을 때 한 술이라도 더 뜨며

“그래도 잘 먹었다.” 하고 웃으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무렵,

시장에 제철 마늘이 나왔다.

엄마는 신이 나 있었다.

야윈 팔로 알알이 마늘을 까고

간장을 끓여 며칠을 붓고 또 붓더니

삐뚠 글씨로 날짜를 적어

마늘장아찌 한 병을 가득 채웠다.

암 진단 이후 고기를 거의 입에 대지 않던 엄마였지만

“고기랑 같이 먹기엔 이만한 게 없다.”며

한 달이 지나 맛을 볼 날을 기다렸다.

장아찌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더위가 깊어질수록

엄마의 컨디션은 나빠졌다.

삼겹살을 구워 김 서방과 함께

마늘장아찌를 먹고 싶다던 엄마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엄마 집을 정리하던 겨울,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아 있던

마늘장아찌 한 병이 우리 집으로 왔다.

조금씩 꺼내 먹을수록,

병 속 마늘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힘겹게 고비를 넘기던 엄마는

끝내 먼 길을 떠났고,

그 마늘장아찌는

엄마가 내게 남긴

마지막 음식이 되었다.

엄마의 손맛은 사라졌지만

기다림은 아직 병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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