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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카페인 May 07. 2024

내가 가진 향기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핸드크림이다. 핸드크림을 필수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의 나는 사은품이나 선물로 받은 제품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사용했던 것 같다. 아주 독한 향만 아니라면 드크림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다.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향을 꽤 신경 써서 핸드크림을  고른다. 피부 기초제품은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사용하지만, 핸드크림은 그야말로 수시로 쓰는 제품이 아닌가. 지고보면 그 어떤 용품보다 사용성이 다.

그러다 알게 된 브랜드가 그랑핸드이다. 서울 곳곳에 매장이 있는데 나는 가회동 매장이 처음이었다. 에 갔다가 우연히 매장 들렀고, 거기서 ‘수지살몬’향을 만났다. 당시 그랑핸드에서는 핸드크림이 3가지 향으로 판매되고 있었는데, 나는 이 향이 제일 끌렸다. 상큼하면서도 은은했고, 그러면서도 흔하지 않은 향이었다. 그렇게 구매하여 그 해 겨울 동안 잘 사용했고, 그 후로도 두 번을 더 구매했다. 주변에서도 핸드크림 향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나는 당당히 '수지살몬'향을 소개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이 제품을 몇 번 선물했다. 혹여나 핸드크림 선물을 ‘가장 고민 없이 고른’ ‘무난한’ 선물로 여길까 봐 내가 이 브랜드를 어떻게 만나게 됐고, 그 후 얼마나 좋아하게 됐는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곤 했다.


며칠 전 생일에 새로운 핸드크림을 선물로 받았다. 조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향이었다. 조말론 제품을 몇 번 선물을 받은 적 있으나 대체로 향이 독해  잘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제품 또한 큰 기대 없이 개봉을 했다. 그런데 웬걸, 향이 너무 좋았다. 우와, 이게 뭐지? 라며 향을 계속 맡다. 수지살몬이 슬슬 지겨워졌는데, 이를 대체할 제품을 만났구나 싶었다. 손을 깨끗이 씻고, 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손바닥을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흐으으으음’ 하고 향을 흡입했다. 너무 좋다, 라고 계속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그 정도면 오늘 하루 종일 손 안 씻겠는데?’라고 하더라. 그렇다, 그 정도였다.


다음 날, 선물을 준 회사 동료에게 DM을 보냈다(선물을 받은 순간 바로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휴일이었기에 참았다). 보내준 선물이 너무 맘에 든다고, 향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내 말에 동료도 매우 기뻐했다. 내가 수지살몬을 즐겨 쓰는 사람이기에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본인도 이 향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향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OO님과 찰떡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올해 상반기에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 나와 어울린다는 말은 그 어떤 칭찬보다 분 좋은 말 아닌가.


선물 자체도 좋지만, 나의 취향을 고려해준 세심함 거기에 담긴 그 진심이 마웠다.


“우와! 이런 향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니, 너무 좋네요.”


그렇다, 핸드크림 이야기는 핑계고 그냥 나는 조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와 찰떡인 사람이라는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향으로 여겨진다는 것, 자랑할 만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그 마음의 온도를  누는 동료가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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