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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카페인 Feb 26. 2024

누가 김밥이 쉬운 음식이라고 했나요

일도 요리도 어려운 직장인들이여

김밥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면, 다들 집에서 김밥을 자주 만들어 먹더라고요. 몇 개씩 만들어서 잔뜩 쌓아놓은 김밥이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고요. 아니 그보다는 밥은 물론 당근, 우엉, 단무지, 햄까지 뭐 하나 어려워 보이는 재료가 없어서 쉽게 도전할 수 있었어요. 가물가물해진 기억이지만 김밥을 몇 번 만들었던 적도 있어도 그냥 마음만 먹으면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김밥.


우선 집에 있는 재료를 확인했습니다. 먹다 남은 당근이 있고, 명절에 선물세트로 받는 스팸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나들이 갔다가 고기를 구워 먹고 남은 풋고추가 있어서 사각사각한 맛을 내기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우엉과 단무지, 그리고 김밥김은 전날 주문해서 새벽배송으로 받아두었고요.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을 시간쯤 밥을 지었습니다. 김밥에 들어가는 밥이 제법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넉넉히 지었습니다. 쌀에 현미도 넣었습니다. 밥이 되는 동안 재료를 손질했어요. 가장 먼저 주황 당근을 채 썰었습니다. 감자 깎기로 당근 껍질을 벗기듯 빗겨주었고, 얇게 벗겨진 당근을 차곡차곡 쌓아서 칼로 채 썰기를 했습니다. 단무지와 우엉이 패키지를 뜯어서 재료를 꺼내 물로 씻었습니다. 스팸은 새끼손가락 크기만큼으로 잘라서 뜨거운 물에 끓였습니다. 풋고추 배를 갈라 씨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두었습니다. 계란은 냉장고에서 두 개를 꺼내 흰자 노른자를 같이 섞었습니다.


프라이팬을 약불로 달군 후 들기름을 살짝 둘렀습니다. 제일 먼저 당근을 데쳤습니다. 몇 분이 지나니 더 선명해진 주황 당근이 고소한 들기름 냄새까지 솔솔 풍겼습니다. 그 팬 그대로에 계란물을 풀었습니다. 지단을 만들 작정이었는데 역시나 팬에 눌어붙어서 뒤집기가 어습니다. 우리 집 팬의 문제인지, 팬을 다루는 실력이 문제인지 언제나 눌어붙습니다. 평평하고 폭신한 지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바로 바꾸고 애초부터 스크램블을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계란을 풀어헤쳤습니다. 어차피 김 속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자리 잡을 테니 이 또한 크게 상관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스팸을 구웠습니다. 기름을 빼면서 익힌 스팸이니 노릇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길 정도만 구워내면 됩니다.


이러는 사이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밥을 그대로 양푼이에 덜어서 소금 살짝과 참기름은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양을 넣어 섞었습니다.

이제 재료는 완성입니다!


도마에 김밥 발을 놓고 김을 올렸습니다. 김에 밥이 겨우 붙어있을 정도로만 펴 발랐습니다. 그리고 재료를 차례차례 올습니다. 이제 반쯤 완성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반이 관건입니다. 김을 말아야 하고,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잘 봉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김 끝을 물이든, 참기름이든, 밥풀이든 뭐든 사용해서 붙여야 합니다. 저는 물로 붙였고, 동그랗게 말린 김밥 겉면에 참기름을 발랐습니다.


완성입니다. 아니다, 잘라야 합니다. 김밥을 마는 것도 기술이지만, 자르는 것도 기술입니다. 절대 방심은 금물입니다.


칼에 참기름을 묻혔습니다. 조심스럽게 칼질을 시작했습니다..


망했습니다. 대체 왜???????????

다시 또 김밥을 말았습니다. 김 끝을 잘 붙였습니다. 참기름을 발랐고, 칼로 잘랐습니다.

다시 또 망했습니다.


김밥, 쉬운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김밥을 하는 날엔 몇 줄씩, 아니 수십 개씩 말아서 쌓아두는 걸 보고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저에겐 쉽지 않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예쁘게 담아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오늘의요리 #오늘의집밥 태그를 멋지게 달고 싶었지만, 그 대신 #요린이 태그를 달고 올렸습니다.


내일은 요리왕을 꿈꾸며..



*그래도 김밥, 맛은 있었습니다. 재료 하나하나가 싱싱하고 간이 잘 맞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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