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 병이 아닌 삶을 돌아보다
누군가 그랬다. 암을 진단받았다면, 최근 1년 8개월 가량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라고..
하지만 내가 돌아봐야 할 시간은 단지 그뿐 아니라, 성인이 된 후 걸어온 20여 년 모든 날들이었다.
결혼 전에는 젊음을 믿고 건강에 소홀했고, 결혼 후에는 책임에 밀려 자신을 버려뒀다.
9년이라는 오랜 연애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어 결혼하게 된 신랑이 너무나 미웠고,
부족한 우리부부에게 찾아온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버겁고 지쳤다.
아침에 잘하자, 다짐하고 저녁에 못했다, 자책하는 매일이 반복되었다.
첫번째 출산으로 인해 단절된 커리어는, 조금씩 무기력으로 나를 잠식하여
두번째 임신에 자궁경부무력증이라는 이벤트를 더해 자신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일상은 지루했고, 인생은 비루했던 22년 겨울.. 나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몇년전 정기검진 때, 추적관찰하라는 의사의 소견을 무시했나?
작은 아이의 모유 수유를 좀더 했어야 했나?
최근 이혼을 거론할만큼 갈등이 심했던 신랑과의 관계가 문제였나?
병원을 나서며 신랑에게 전화해 사실을 전하고 큰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갈때까지만 해도, 황망하고 당혹스러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큰 아이를 만나 얼굴을 마주하니, 울컥 목구멍으로 슬픔이 올라왔다.
아,, 내 아이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우리 딸이 자라 첫 월경을 하고 시집가는 모습을,
우리 아들이 자라 군대를 가고 장가가는 모습을 볼수도 없겠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 신랑, 아이 둘을 잘 키울수 있으려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가슴을 휘저어, 아이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죽음'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고 절망했다.
억울함, 서러움, 두려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삽시간에 나타나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아산병원의 초진을 기다렸다.
친정식구들은 의외로 덤덤했고, 그것이 나를 더 굳건하게 지켜줬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이 보내는 동정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가족이 건네는 위로와 격려가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큰 동생은 주변인의 치료사례를 전하며 내게 용기를 주려 노력했고,
엄마와 작은 동생은 생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들어와 육아와 살림을 맡아주었다.
특히, 어지러운 마음은 양양 여행을 통해 많이 정리할 수 있었는데,
낙산사 홍련암에서 들었던 세찬 파도소리가 걱정과 고민을 쓸어가서
치료 전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막 암을 진단받고
고통스럽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할 것을 권한다.
여행 내내 아이들과 예쁜 사진을 남기며, 괜찮다고..
그동안 나 자신을 돌볼 여유없이 쫓기듯 살아온 삶에
예기치 못한 쉼표가 찾아온거라고.. 치료기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을
좀더 소중하게 보살피며 가꾸다보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나를 다독이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불안을 덜어내고 차분히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병을 깨닫고 삶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각자 인생에 너무나 소중한 일년의 시간을 기꺼이 희생해 준 엄마와 작은 동생,
시간이 날 때마다 암 환자에게 필요한 음식과 책을 보내준 큰 동생,
그리고 애써 불안을 감춘 채 묵묵히 가장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 신랑,
아픈 엄마와 어린 동생을 챙기며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던 우리 딸..
무한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2023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자 감사의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