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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an 13. 2020

‘식’취향 탐색

먹찌질이의 즐거운 도전


얼마 전 육회가 맛있기로 소문난 주점에 갔다. 육회가 나오자 마자 노른자를 탁 터뜨리고 재빨리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곧바로 진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옆자리 친구 역시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육회를 향한 젓가락질은 멈출 줄 몰랐다.


사실 육회를 이렇게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은 친구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조금 낯설다. 나는 ‘날 것을 못 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육회를 비롯하여 회, 초밥, 굴, 산낙지. 날음식 특유의 물컹한 식감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날음식은 입에 절대 대지 않았고, 친구들은 이런 나를 측은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못 먹다니..” 이런 내가 육회를 먹자 마자 진실의 미간을 내비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육회를 처음 맛 본건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때 학교 앞에 ‘육앤샤’가 처음 생겼다. 이름에서부터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육회와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매일 비슷한 루틴의 식사에 약간 지루해졌을 즈음이라 새로운 식당의 오픈이 마냥 반가웠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 날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친구들과 함께 그 식당을 찾았다. 물론 메뉴는 샤브샤브였다. 특샤브 4개를 시키려는 데 한 친구가 말했다. “야, 특샤브 3개만 시키고 육회비빔밥 하나 시키면 안 돼?”

그렇게 처음으로 육회를 맛보게 된 것이다. 날음식이라면 무조건 안 먹고 봤을뿐더러 가족 중에서도 날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먹을 일이 없었기에 인생 첫 육회였다. 밥, 야채랑 같이 먹으면 특유의 식감이 많이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친구들의 말에 속는 셈 치고 비빔밥을 크게 떠 한입 먹어보았다. 깜짝 놀랐다. 맛있어서. 입 안에 참기름에 버무려진 육회의 고소함이 가득 퍼졌다. 꼭꼭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더해졌다. 물컹물컹한 식감은 밥과 야채와 함께 먹으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육회를 못 먹는다고 말해왔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만족스러웠던 육회(비빔밥)와의 첫만남 이후, 이따금씩 그 맛이 생각이 나서 육앤샤를 찾았다.


육회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육회지존’이라는 술집 근처에서 자취를 하면서다. 육앤샤의 육회비빔밥만 몇 번 먹었을 뿐이지 여전히 육회는 어려운 음식이었기에 굳이 찾아가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준비를 다 마쳤을 때였나, 룸메가 집근처에서 술을 먹고 있으니 오려면 오라고 전화를 해왔다. 잠들기 아쉬웠던 터라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갔다. 룸메에게 어디냐 물으니 육회지존이란다. 그들은 산낙지와 육회를 안주삼아 소맥을 마시고 있었다. 같이 술을 마시던 동생은 혜인 언니가 먹을 안주가 없어서 어떡하냐며 메뉴판을 펼치고는 내가 먹을 만한 안주가 없는지 보는 듯했다. 나는 술이나 몇 잔 마시다 갈 거라고, 굳이 안주를 더 시킬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술이 들어갔으면 안주를 채워주어야지. 자연스레 육회를 몇 점 집어먹었다. 육회비빔밥을 먹으면서 단련이 된 걸까? 싫기만 하던 그 물컹한 식감이 괜찮게 느껴졌다. 어느새 야금야금 육회를 내가 다 먹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육회 한 판을 더 시켰고, 긴긴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육회가 꽤나 괜찮은 안주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입맛이 바뀐 건지, ‘나는 날음식을 안 먹는 사람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건지. 어찌 되었든 육회와 친해지고 난 후부터는 종종 그동안 안 먹던 음식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음식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취향을 알아가는 건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맛있는 음식은 먹는 순간 행복회로가 가동된다. 즉,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가장 빠르고 단순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기에, 몰랐던 ‘식’취향을 탐색하는 것은 요즘 나의 삶의 만족도를 한 층 더 높여주고 있다.


최근에 새롭게 빠진 음식은 게장이다. 제 작년에 여수에 가서도 게장을 먹지 않았던 나인데, 다가오는 여수 여행에서는 게장을 싹 털고 올 테다. 게장 먹을 생각에 한 달 전부터 들떠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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