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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0. 2019

봄바다의 정취

4월의 어느 날, 강원도 삼척에서.

유채꽃 그리고 바다. 이 두 가지 키워드만을 정해 둔 채, 친구들과 삼척으로 향했다. 지천이 온통 노란빛이었던 유채꽃 축제의 현장. 드넓은 땅을 가득 채운, 샛노란 생기를 내뿜는 유채꽃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봄이구나,’ 싶었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샛노란 봄을 가득 담은 후 우리는 장호항으로 향했다. 

샛노란 유채꽃과 새파란 하늘의 조화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장호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여름에도 이 곳, 장호항에 왔다.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고, 바다로 가는 길목엔 이런저런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나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휘적휘적 헤엄을 치며, 스노클링을 즐기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여름의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나 역시 그 사이에서 어린아이처럼 물놀이를 즐기며, 활기 넘치는 여름휴가를 보냈다. 




봄에 찾은 장호항은 지난여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고요하고 잔잔했다. 모래사장을 수놓던 파라솔은 사라졌고, 줄지어 있던 길거리 음식점도 없어졌다. 그나마 있는 몇몇 사람들은 드문드문 흩어져 봄의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손을 잡고 발로 바닷물을 차는 부녀, 바다의 생명체를 관찰하며 아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 삼각대를 설치해 바다와 자신들의 모습을 담는 내 또래의 여인들. 고요함 속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저마다 봄의 장호항을 만끽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흩어져 저마다 봄의 장호항을 즐기는 사람들.

봄바다의 정취를 느끼다. 

우리는 이쪽저쪽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시선에서 바다를 보았다. 바닷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일 만큼 맑고, 깨끗했다. 여름에 왔을 땐 물속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랬나, 장호해변이 이토록 맑다는 걸 실감치 못했는데. 다른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닷물 위에 햇살이 촤르르 떨어져 윤슬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작은 배들이 유유히 떠 다니고 있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풍경이라니.

잔잔한 물결과 따사로운 햇볕이 만났을 때.

실컷 돌아다니다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때마침 모래사장엔 아무도 없었다. 친구는 “너네를 위해서 내가 빌렸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정말로. 우리가 그 거대한 바다를 빌린 것 같았다. 철썩철썩 규칙적인 파도소리만이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의 휴대폰에서는 이 고요한 분위기를 극대화해주는 이소라의 7집 앨범이 전곡 재생되고 있었다. 조용히 노래를 듣던 친구는 “이 집 선곡 좋네.”라며 칭찬을 툭 던졌다. 기분 좋은 파도소리와 음악소리, 그리고 간간히 내뱉는 감탄사만이 이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앉아 내내 바라보았던 풍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파랬던 하늘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청량했던 바다는 붉은 노을을 만나 더욱 다채로운 매력을 내뿜었다. 붉은빛, 푸른빛이 만나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만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빛이 짙어졌다. 그리고 이내 어둠이 내렸다. 이 아름다운 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할 줄 알았더라면 부지런히 타임랩스를 찍을 걸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앉아있을 줄 알았더라면 와인이라도 한 병 가져올 걸 싶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숙소로 향했다. 

시시각각 다른 색을 선보이는 해질녘의 하늘.

봄바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봄의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덕에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들을 오래오래, 한가득 담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고요함을 느끼면서. 바닷물에 발 한번 담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온몸으로 만끽한 날이었다. 이젠 봄엔 꼭 한 번 꽃놀이를 가듯, 바다를 찾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더 다양한 계절의 바다를 느껴 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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