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혀님 Jul 25. 2018

노회찬의 사랑

짧은 기억

신문사 공채 시험에는 논술이 있다. 내가 입사할 때도 '대한민국의 애국에 대해 논하라'는 주제로 논술을 써야 했다. 쓸 말이 없어서 꺼냈던 이름이 노회찬이었다. 노회찬 의원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애국에 대해 묻는 질문에 노 의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이 국가공동체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악의 없이 그 공동체를 일구고 있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공동체를 사랑하겠다는 논리. 나는 노회찬의 이름을 빌려 논술을 써내려 갔다. 감사히도 좋은 결과가 있었다.


신문사에 들어가기 전에도 노 의원을 가끔 볼 일이 있었다. 국회에서 일할 때 간담회, 세미나 같은 자리에서였다. 그때 들었던 얘기가 노 의원의 정치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이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두고 공수표를 던진다는 식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지나 사법권력이 노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그는 그의 판단을 후회하지 않는다 했다. 세간의 평처럼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몇 년이 지나 정의당을 출입하는 기자가 됐지만 막상 노 의원에게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다. 존재감이 없는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팔아 회사에 들어왔지만 막상 기사에 그 이름을 쓰는 일은 뜸했다. 어쨌든 연락하면 곧장 전화를 받거나 콜백을 주는 흔치 않은 취재원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노 의원이 출마한 지역구 르포 일정이 잡혀 내심 좋았지만 결국 취재를 하루 앞두고 무산됐다. 존경하던 분이 극적으로 내 고향의 국회의원이 될 문턱에 올랐지만 지면은 사사로운 애정을 담을 여유가 없었다.


회사를 나오면서 정의당에 입당했다. 그를 보고 입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존재는 든든했다. 그런데 입당 직후에 어떤 기사가 떴다. 당내 여성주의자 조직에서 '노 의원을 공격하는 게 가성비가 좋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는 기사였다. 어쩌다가 그는 값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걸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이다지도 잔인한 그의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그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노 의원은 제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해 낸 것 같다. 사랑했던 모든 것을 저버리는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했다. 무슨 방법으로 그 사랑에 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당신이 머물던 이 공동체를 사랑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