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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Oct 15. 2023

나는 음악을 안 좋아합니다.

리터럴리

벅스에 접속한다. 추천받은 아티스트를 검색하고 그의 음원 여러 개를 선택해서 재생한다. 구매하지 않은 음원은 1분까지만 들을 수 있지만 이 음원의 호불호 여부는 30초 이내로 결정되기 때문에 호인 경우에만 1분까지 채워서 듣는다. 나의 선택을 받은 음원들을 다시 나열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한 달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최대 음원 수가 서른 곡이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다운로드할 음원을 선택하면 느릿느릿하게 다운로드 퍼센티지가 올라간다. 그렇게 다운로드된 음원은 클릭 후 드래그 해서 아이튠즈에 넣는다. 그러고 나면 내일 등하굣길 내내 들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업데이트된다. 아이팟 용량이 좀 많이 찼다 싶은 날에는 심혈을 기울여서 삭제할 음원을 선택한다.


중고등학생 때는 음악에 꽤나 정성을 들이는 아이였다. 흑백 화면에, USB 포트가 본체에 붙어있는, 전체 용량이 1GB 정도 되는, 아이팟 등장 이전의 원시적인 MP3 기기를 들고 다니던 시절부터 그랬다. 아니, 오히려 용량이 적었던 과거일수록 더 신중하게 플레이리스트를 관리했다.


슬프고 감동적인 가사에 종종 하교 버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어후에 버스를 타고 하교하는 날이면, 나는 일본 영화의 여주인공이요, 내가 듣는 음악은 영화의 OST였다.


들이는 정성이 클수록 비례하게 커지는 것이 바로 자부심이다. 나는 음악을 좀 알아. 나는 멜론 탑 100을 듣는 ‘평민’들과 달라. 검정치마, 캐스퍼, 허밍어빈스테레오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마이너 하지도 않은 취향을 가지고 나의 “마이너”한 정체성을 정의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음악을 안 듣는다. 그러니까 아예 안 듣는 것은 아니고, 유튜브 뮤직 유료 플랜을 구독하기는 하나 한 달 이용 시간이 두 시간 남짓이다. 그마저도 최신 유행곡이 반절이다.


이런 큰 변화에는 거시적 이유와 개인적 이유가 이 있다. 거시적 이유는 음악이 너무 흔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선곡한 음악에 한해서만 듣고 즐길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한 달에 만 원 내외 정도 되는 돈을 내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기술적 변화가 앗아간 음악의 희소성은 특정 음악을 향유하는 시간의 소중함도 함께 앗아갔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음악을 듣는 행위가 옛날처럼 감동적이지 않다. 말 그대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개인적인 이유이다.


여분의 시간 동안에는 주로 책을 읽는 편인데 20대 초반 어느 순간부터 가사가 독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이후부터 가사가 없는 음악 중심으로 듣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가사가 없는 맬로디조차 방해가 되어서 안 듣기 시작했다. 책이 없는 시간 동안에는 그저 멍을 때린다.


왜냐하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생각보다 굉장히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이 좋은지 알려면 음악에 집중하고, 가사를 듣고, 그걸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지는 이 ‘바쁘다 바쁘다 현대시회’에서 음악에 능동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고 몰입하는 행위가 부담으로 느껴진다.


비로소 음악도 나의 우선순위 저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시인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나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나가 아는 한 교양과 간지를 겸비한 없고 사람들은 오두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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