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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Nov 22. 2023

복수의 소질

복수에 소질이 없다.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복수를 하고 싶을 만큼 불쾌한 일을 당한 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복수라도 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나 실패로 끝이 났다. 오히려 나중에 혼자 곱씹고, 부글부글 분노하고,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데!’를 속으로 외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날도 그랬다. 막상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복수가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와, 좋겠다. 나도 너처럼 결혼하고 집에서 놀고 싶다.”


사람은 때때로 무례한지도 모르고 무례한 말들을 내뱉는다.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맥락을 더 알려고 하지 않는 그 나태함과 맥락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성급함이 나쁘다.


피부 표면이 따가울 정도로 뜨겁다가도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모든 게 끈적거리기를 반복하는 한여름이었다. 이 덥고 습한 날 아이를 출산한 엄마 대신 내가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고 있었다.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 기능 덕분에. 평소에는 연락을 많이 주고받지 않는 지인들까지 메시지를 보내며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생일이 아니면 연락할 일이 없는 지인들과의 대화가 트이기 시작하자 근황을 묻는 질문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나는 한 달 후에 회사를 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이직할 직장을 묻기에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해보려고 한다고. 또. 그러니까 나는 작년 이맘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해 보려고 퇴사를 했다가, 입사를 했다가 다시 퇴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5년 간 만나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는데, 생일이 아니면 연락할 일이 없는 나의 얕은 지인들 눈에는 나의 퇴사가 “남편 월급으로 집에서 노는 것”으로 보이는 듯했다. 물론 가까운 지인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은 적어도 나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나의 맥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무례한 말들은 그 날 뿐만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쉴지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결혼 조심해서 잘해야겠다”라고 말하며 알지도 못하는 내 남편을 안타까워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정작 남편은 가끔 미안한 기색을 비추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혜민이 너가 도전하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을 듣는 순간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래, 너도 퇴사해~"라고 대답하고 말았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실수임을 직감했다. 그 이후로 자주 그 말이 떠올랐고, 떠오를 때마다 불쾌했다. 지들이 뭘 안다고. 노는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불쾌한 기분을 상쇄시키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변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더 불쾌해졌다. 그렇다고 초등학생 시절 친구와 방학 전에 싸우고 새로운 학기에 화해하는 것 마냥 “너 그때 왜 그랬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잠깐 불쾌하고 말 수 있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과 머리에 남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유. 실은 나도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주창하고 다녀놓고 남편에게 다음 달부터 동일한 금액의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사실 때문에 불안했다. 인정하지 못하고 외면하던 말을 타인의 입에서 들어서 지독히도 불쾌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불쾌한 기분이 해소될까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잘 되어야지.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서 그때 남편 월급 축 내면서 논 거 아니라고,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이해하고 부러워할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의지가 불타올랐다. 나 자신이 나태해지고 있다고 느낄 때면 그들의 글과 얼굴을 떠올렸다. 잘되어야지. 증명해 보여야지. 어느새 해야 할 일에 더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어렴풋이 복수라는 개념의 기저에 제로섬이 깔려있다고 단정했던 것 같다. 내가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상대의 것을 깎아 먹어야 하는, 그러다 보면 상대도 다시 내 것을 깎아먹을 궁리를 하게 되는 그런 비생산적 굴레 말이다. 그럴 바에는 내가 고상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자기 합리화인지 아닌지 모를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복수 나쁘지 않은데? 나에게 부가가치가 있는, 이런 복수라면 논제로섬 게임이 될 법했다. 나 복수에 소질이 생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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