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on Oct 17. 2024

독일에서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본 유일한 그 사람


스포일러 방지용!


곤니치와(こんにちは)!


독일 소시지가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하나 사 먹어보려고 간이매점에 갔다. 소시지 굽던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건넨 인사이다. 외국인을 나름의 방식으로 환영하려는 것 같아서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일본에 지독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거나, 내 국적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내셔널리스트였다면? 아니면 내가 독일에 입양되어 독일 국적과 독일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다른 언어를 쓰는 건, 굳이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많은 국적의 사람이 모여 사는 독일 같은 나라일수록 말이다. 그래서인지 독일 사람들은 상대가 독일어를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독보적이고 특수한 위치에 있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여름에 잠시 체코에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프라하에 있는 마라탕 식당에 갔더니, 종업원이 나한테 대뜸 중국어를 해버리는 것이다. 어라, 체코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를 갈겨버리네? 근데 그녀에겐 이게 꽤 합리적인 추론이었을 것이다. 유럽 중심가에 있는 진짜배기 마라탕집을 오는 아시아인 외모의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판단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각자의 방식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다.


내가 겪은 또 하나의 ‘각자의 방식’은 내가 독일어를 배우고 나서 더 잦아졌다. 그들에겐 그냥 나는 ‘독일어 못하는 외국인’이었는데, 이제 더 애매한 ‘독일어를 조금 하긴 하는 외국인’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싸가지 없는 놈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감사합니다’ 정도는 독일어로 해야 싸가지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얼기설기 배운 독일어로 대강 무장하고선 박물관에 가서 “Ich habe ein Student Karte* (저 학생 카드 있어요.)”하고 더듬더듬 말했더니, 그 박물관 직원은 심드렁하게 영어로 대꾸했다. 사실 그때 조금 기분 나빴는데,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독일어로 뭐라고 한들 내가 그 사람의 답변을 알아들었을 수 있을까 싶다. 그 사람은 내 초보적인 독일어 실력을 알아채고 그저 몇 가지 ‘허울뿐인 예의를 위한 단계’를 건너뛴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각자의 방식'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 마트에선 한국인 종업원이 나에게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아마 그녀는 내가 한국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게에서 막걸리를 쓸어가는 인간의 국적을 유추하기란, 프라하에서 마라탕집에 가는 아시아인처럼 꽤 쉬운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그녀는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내 국적을 맞추는 모험보다, 독일에서 독일어로 인사하는 가장 보편적인 예의를 보여줬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전단지를 주면 그것으로 공부하려고 일단은 다 받곤 한다. 거기서 나오는 문장들이야말로 생활 독일어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 공원 앞에서 하고 있는 축제 속에서 걷다가 그날도 어김없이 주는 전단지들을 다 받았다. 어떤 사람은 전단지에 달력까지 주고 있었다! 달력을 넘겨준 그는 갑자기 나를 쓱 훑더니, “You Korean?”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놈 뭐지?'싶어, “응”하고 대답했더니**, 자기네 텐트로 가서 한국어로 된 전단지를 들고 와 건네는 게 아닌가!



어?





* Ich habe eine Studentenkarte가 옳은 표현이다. 당시엔 저렇게 말했기에 그대로 실었다.

** 당시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한국어로 “응”이라고 해버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독일에서 처음으로 글을 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