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지배하는 세계
[벌주기]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 수동-공격적인 방법으로 벌을 준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기분으로 상대를 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좋아하는 콘서트를 가려고 돈을 모아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가지만, 그는 내내 짜증을 내며 당신이 콘서트를 즐기지 못하게 한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_(5. 통제와 조종 中)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선택과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어떤 것은 그냥 해보는 것만으로도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어떤 기회는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기도 하고, 어떤 선택은 모든 것을 망칠 재앙이 되기도 한다.
중학생 때 나는 연극부를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특별활동 시간에 포함되어 있던 연극부는 가위바위보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쟁취했지만, 나는 쟁취한 동시에 불안이 몰려왔다. 엄마에게 연극 동아리를 하게 되었는데 연습을 위해 가끔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전해야 했다. 늦게 되면 연락하겠다고도. 집에 돌아가 쭈뼛쭈뼛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엄마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서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다른 걸로 바꾸라고 했다. 내가 다른 활동으로 옮기지 않자(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정해진 학교 활동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엄마는 한동안 모든 대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무시함으로써 다른 활동으로 바꾸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연극부 활동을 하는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엄마는 내가 가끔 연극부 활동으로 늦게 집에 들어오면 온갖 짜증을 부렸다. 하루 종일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다음 날 혹은 며칠 동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가끔은 침묵을 지키면서 학교에서 늦게 왔다는 이유로 혼을 냈다.
하지만 그때는 어렸으므로 불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마음도 잠시, 학교에 가면 그 사실을 잊고 동아리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활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문 앞에서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즐거운 표정을 보여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도서부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판화로 찍은 것처럼 엄마는 내가 연극부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도서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도서부를 하지 말고 다른 걸로 바꾸라고 하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혼을 냈다.
엄마는 내가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사용하는 만큼 나를 통제할 시간이 줄어들 테고, 줄어든 시간만큼 엄마가 모르는 나의 시간이 늘어났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그런 이유로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걸 싫어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원어민 교사에게 학교에서 몇 명 뽑는 여름 방학 홈스테이 교환학생 추천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기한을 주고 부모님께 여쭈어보고 오라고 했다. (아마 내가 영어를 잘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선생님과 친하기도 했고, 가서 문제없이 잘 적응하며 지낼 수 있는 학생이라 여겼던 것 같다.) 나는 집으로 가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려 했지만, 그날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눈치를 보며 며칠 동안 안방 문 앞을 서성이며 방 안에 있는 엄마가 기분이 좋아지길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을 버텨낸 후 기한이 거의 끝날 때쯤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니가 무슨(그런 데를)’이라는 말로 거절을 표하며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고 지금 자신이 굉장히 불쾌하다는 티를 냈다. 그리고 ‘가긴 어딜 가냐?’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엄마의 기분이 조금 좋은 것 같으면 기회를 잡아보려 애썼지만, 엄마는 이후로 쭉 침묵했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 추천 기한이 지나버렸다.
방학이 끝난 후, 원어민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방학 동안 다른 친구들이 홈스테이에 다녀온 사진을 보여주셨고, 나는 구경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 있던 컴퓨터를 바꾸게 되었는데, 나의 진로는 새 컴퓨터가 온 날 갑작스럽게 정해졌다. 나의 의사도 상관없이.
엄마는 대뜸 “니는 아빠 닮아서 컴퓨터 잘하니까 컴퓨터공학과 가라.”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엄마의 규칙에 대부분 적응했거나 익숙해진 상태였고, 그 덕에 자아를 거의 잃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흠을 잡지 못해 안달이던 엄마가 잘한다고 하니까, 엄마의 그 말은 내 생각과 무관하게 내가 진짜 잘하는 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엄마의 말이 맞지.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니까. 그런 건 엄마가 잘 아니까.
그렇게 수시를 쓰고 다 떨어졌다. 그리고 수능을 봤다.
엄마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수시 이후로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수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어정쩡한 공간에 놓여 주변 친구들이 수능 해방의 날을 맞이하여 놀러도 가고, 밀린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각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나서 학교에 모여 요즘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만 했다.
엄마는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한 상태로 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나는 집에서 TV도 볼 수 없었고, 컴퓨터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쉬지도 못했고, 책을 읽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엄마에게 전화가 왔기 때문에 학교가 끝난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음 날 학교에 갈 때까지 집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다.
엄마는 원서를 써주지 않는 것으로 기회를 차단하고 나를 벌했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이 말한 대로 이루지 못하면 넌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이 상황, 이 분위기는 다 니가 직접 초래한 거라고.
그렇게 엄마는 아무런 행동도 반응도 하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강제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몇 달이 흐른 후 수시를 쓸 시기가 다가와 원서를 쓰는데, 엄마는 또 나의 의사는 무시한 채 자신 마음대로 과를 정했다. ‘안경공학과’, ‘노인복지학과’, ‘교정보호학과’ 등등. 이 학과에 관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려는 건 절대 아니고, 엄마는 내 의사를 무시한 채 서로 관련 없는 학과를 아무거나 골라서 원서를 썼다. 평생 함께 살아왔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차라리 엄마가 어디든 대학을 가는 것에만 목적을 뒀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이며 (‘너 안경 썼으니까 안경공학과 가라.’, ‘너는 사회복지사 잘 어울린다. 노인복지학과 가라.’, ‘너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으니까 교정보호학과 가서 공무원 해라.’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너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미래가 어울리는지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엄마인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말대로 원서를 쓰지 않는다면 아예 원서를 써주지 않겠다는 의미를 나를 위한다는 말 속에 숨겼다.
나는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는 마음에 제발 내가 원하는 곳으로 딱 한 군데만 쓰자고 했고, 엄마는 너에게 그럴 권한은 없다며 거절했다. 그때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하나라도 내가 원하는데 써줘. 엄마가 원하는 대로 5개나 썼으니 1개 정도는 양보해달라고.’라고 말하며 엄마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했는데 엄마는 내가 매달리는 모습이 좋았는지 웃으면서 ‘그래, 그럼 하나 정도는 허락해 줄게’하며 내가 원하는 학과 하나 정도를 허락해 줬다.
내 삶 속의 수많은 기회와 선택으로 이루어진 경험은 이런 식이었다.
이런 형태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스스로 여러 기회들을 차단했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희미해질 때까지 불편함을 뿜어내는 엄마의 분위기를 겪거나, 퍼부어대는 엄마의 공격적인 언행을 견디는 상황에 빠지거나,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서 삶의 통제권을 빼앗기고 그 어떤 경험도 차단된 채 스스로 선택한 재앙으로 불행해지는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기회가 생겼을 때 내 선에서 빨리 포기하고 잘라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포기는 언제나 신속하고 익숙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엄마의 족쇄를 차고도 걸어갈 힘이 생기는 날이면 해보고 싶은 경험을 해보려 노력했다.
선택은 늘 긍정적인 경험만 주지 않는다. 또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 실패 자체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잘 되기도 해보고, 못 해서 실패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가끔 내가 한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엄마는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나를 비난했다. 내가 한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엄마는 “내 그럴 줄 알았다. 니가 하는 게 다 그 모양이지.”라고 말했다. 만약 성공했다고 한들, 엄마의 반응은 같았을 것이다. 내가 잘하더라도 칭찬하지는 않았을 테니. ‘…근데,’라는 말로 입을 떼며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경험을 부정했을 테니까.
[참고도서]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