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칭찬 없는 삶

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지배하는 세계

by 은현



“그들은 당신이 칭찬이나 주목받을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_(4.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특성 中)


“매들린이 어쩌다 한 번 자신의 성과를 언급하면 샬럿은 괴물인 매들린의 본모습을 자기만 알고 있을 거라고 쏘아붙였다.”

『생존자들』 _(4부 안녕, 괴물아_정신적인 잠수병 中)



엄마는 칭찬을 해준 적이 없다. 비난이나 지적이면 몰라도. 그중에서도 ‘말을 못 함’에 관한 발언을 자주 했다. 엄마는 항상 내 말을 끊었고, 안전한 상황에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서 말을 못 한다고 지적했다. “말 좀 해 봐.”, “말하라고 기회를 줘도 못 하냐”, “지 하고 싶은 말도 잘 못하네.” 나는 그 상황에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 되면 5시간 안에 끝날 엄마의 쏟아지는 말을 8시간 넘게 들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는 걸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상황이 생기면 엄마는 꼭 “우리 애가 말을 잘 못해요.”라고 공표했다.

나는 최근까지도 이 말을 굳게 믿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맞아. 사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하지 못하지.’



만약 이런 것도 칭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엄마가 칭찬하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그중 하나는 엄마는 ‘너(혹은 동생에게 니 언니)는 나 닮아서 손재주가 좋아.’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오로지 ‘손재주가 없는’ 동생을 ‘너는 어째 누굴 닮았니?’라며 비난하기 위함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있던 나는 그 대화에 끌려 들어가 칭찬을 당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그저 ‘나는 손재주가 좋아’라고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또 하나는 칭찬으로 시작해서 비아냥으로 끝나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상을 받는다거나, 타인에게 칭찬을 받았다거나, 스스로 생각했을 때 대견한 일이 있다거나)이 생겨 기대에 들뜨면, 엄마는 칭찬으로 시작하는 듯한 말을 시작한 뒤, ‘근데…’ 하면서 운을 띄우곤 비아냥이나 비난, 모욕적인 언행으로 끝맺으면서 가짜 칭찬을 완성했다. 아주 살짝 비웃음이 섞인 미소는 언제나 눈 깜짝할 새 스치듯 지나갔다.

마지막으로는 칭찬 자체가 비아냥의 말이다. ‘잘했네’라는 느낌의 말처럼 단어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말투를 통해 전혀 반대의 뜻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방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칭찬을 들었는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엄마가 칭찬을 해줘도 기분 나빠하는 이상한 딸이야’라는 결론을 냈다.


이상한 가짜 칭찬을 들은 경험이 많음에도 지금 당장 예시로 가져올 상황을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칭찬과 조롱이 합쳐진 가짜 칭찬은, 이제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굳건한 탑이 되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딘가에 존재하게 되었다.

분명 다양한 것들이 있을 텐데 아무리 기억해 내 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회에서 특정 상황을 맞닥뜨려야 ‘아, 엄마가 이거 못한다고 평생을 내 귀에 피가 나도록 말했는데, 타인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네?’ 하고 알게 된다. 쏟아질 비난과 조롱을 예상하다가 우려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낯설었다. 이것도 칭찬을 한두 번 들어서는 절대 통하지 않고, 정말 수십 번은 들어야 ‘못 하는 게 아닌가?’하고 겨우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사실 그런 의문보다 ‘내가 못 하는 걸 들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더 자연스러웠다. 여기서 ‘못하는 것’의 의미는 ‘실제로 나는 못하는 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들키면 어떡하지?’라는 의미와 ‘타인의 눈에 내가 지금은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못 하는 걸 보여주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복합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칭찬이 없었으니 관련 경험이 떠오르지 않는 건 당연한 거잖아? 라는 사실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인생에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뒤졌다. 정말로 칭찬을 받을만했던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닐까. 기억에만 의존하자니 정말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자료를 찾아보다가 학교 다닐 때 받은 상장이 떠올랐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살펴보았다. 이런 상을 받았던가? 싶은 상도 있었고, 맞아. 나는 이런 걸 했었지 싶은 기록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받은 상장)

- 스승의날 기념 동영상 경진대회

- 연극부

- 백일장

- 몇 차례 교내 독서상

이러한 상장이 있었음에도 칭찬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칭찬했는데 니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냐’라며 따져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만. (위에 언급했던 칭찬 패턴을 생각해 본다면 마지막의 ‘잘했네’ 같은 칭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스승의 날 기념 영상과 연극부의 경우는 전혀 생각나는 점이 없고, 몇 차례의 독서상의 경우 상을 받아올 때마다 엄마는 ‘이 상을 받은(받을 수 있었던) 건 너가 어릴 때 내가 도서관에 자주 데려갔기(좋은 습관을 길러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백일장의 경우에는 ‘니가 그런 상장을 받을 줄도 알고?’라는 느낌의 말을 들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너 글 못 쓰잖아.”라고 했다. 글에 관해서는 항상 글을 못 쓴다느니, 글 쓸 줄 모른다느니, 동생보다 못 쓴다느니 등의 말을 쏟아낸 전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제때 칭찬을 받지 못했거나 적절한 칭찬을 받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훑어보다가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에 다닐 때 대학교수 추천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 조교에게 연락을 받고 내가 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엄마는 그걸 다른 사람 주라고 했다. 거기에다 ‘줄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너한테 줬겠니)’이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약간 복잡한데 당시 저 추천 장학금은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받을 수도 있었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있었다.)

내가 받은 장학금인데 엄마는 내가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일단, 어떤 장학금이든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은 칭찬… 성인이고 대학생이니 칭찬이라기보다는 어찌 되었든 축하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 일단 교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학교생활을 성실히 했다는 의미라고 볼 수는 없는 걸까. 그런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나는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조교에게 의사를 밝혔지만, 그 장학금은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고 돌아온 장학금을 수령하게 되었고, 엄마는 내가 그 돈으로 가족들에게 한턱 쏘지 않았다는 말만을 몇 년 동안이나 언급했다.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없던 나는 장학금을 받아놓고 한턱 쏘지 않은 이기적인 년이 되었다.



내가 20대 초반쯤이었나, 엄마가 취미로 미술을 시작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오랫동안 취미를 이어가고 있다. 조금 의외였지만, 일상에 취미가 생긴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몇 년 되었을까, 나는 아마도 엄마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엄마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가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시기의 나는 방에서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며 (나의 행동에 사사건건 트집 잡는 엄마의 딴지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처럼 크로키를 그렸다. 어느 정도는 그릴 수 있어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대화하다 그림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게 된 적이 있었다. 엄청난 칭찬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삼삼하더라도 엄마에게 어느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다. ‘너 그림에 관심 있었니?’ 라거나, ‘여긴 이렇게 그리는 게 더 자연스럽겠구나’라거나… 이런 말들이 대체로 보통 정상적인… 도대체 ‘보통’과 ‘정상적인’이 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평범하면서 보통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 그림을 보자마자 “그런 걸로 돈 벌 수 있니?”라고 말했다.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그 말 뒤에 '그런 거(지금 당장 돈이 안 되는 그림) 계속 그릴 거냐.', '너는 일러스트 학원 같은 데 다녀야겠네.' 같은 말을 했던가.

예상을 뛰어넘는 엄마의 반응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엄마는 그런 게(돈 벌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앞에 있던 TV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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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림 연습을 그만두었다.

나는 이제 저때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참고도서]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생존자들』



『생존자들』 _(4부 안녕, 괴물아_정신적인 잠수병 中)

<세뇌의 기본 원칙>

세뇌 전문가인 심리학자 마거릿 싱어(Margaret Singer)는 저서 『우리 안의 컬트: 그들 이면의 위협과 벌이는 끊임없는 투쟁(Cults in Our Midst: The Continuing Fight Against Their Hidden Menace)』에서 세뇌의 기본 원칙을 소개했다.

1. 이것이 어떤 상황이며,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조금씩 심리적으로 길들일 계획인지 절대 모르게 한다.

/매들린의 어머니는 같이 사는 동안 매일 아침 그녀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2. 체계적으로 무력감을 조성한다.

/모든 아이는 무력하지만 모든 어머니는 전능하다. 핵가족에서는 권력 구조가 그렇게 설정된다. 샬럿은 워낙 막강해서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남편조차 딸과 함께 지하 창고에 숨었다.

3.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나 신념체계, 집단 안에서 용인되는 행동을 전파할 수 있도록 집단 차원에서 상과 벌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조작한다.

/매들린의 집에서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했다. 아버지는 진실, 품위 있는 행동, 사회계약의 중요성을 상징했다. (…) 어머니는 아버지의 원칙을 비웃었고, 그의 점잖은 행동을 ‘내숭’으로 간주했고, (…)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은 ‘재미있다’라고 (…) 표현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