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통치하는 세계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 혼자 외따로 고립된 섬에 갇혀 자랐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딱 세 걸음 걸으면 끝이 나는 섬. 엄마가 만들어낸 공간. 내가 살아왔던 공간. 아주 좁고 아무것도 없는 섬. 나는 언제나 혼자 고립된 기분을 느끼며 자랐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소외된 기분을 항상 느꼈고, 친구들과 지낼 때도,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언제나 혼자 동떨어진 외딴섬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주로 물 위에 홀로 떠 있는, 동서남북으로 세 걸음씩 돌아다니면 끝나는 작은 섬이었지만, 이 고립된 공간은 자고 일어나면 엄마의 기분에 따라 장소가 바뀌기도 했다.
황무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장소일 때도 있었고, 서문에 언급했던 군데군데 구덩이가 파여있고 잠긴 문들이 있는 공간일 때도 있었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위에 있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소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떤 날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뛰어내려 보기도 했는데, 뛰어내린 장소는 다시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 있는 곳이었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겨우 다시 섬으로 기어 올라갔다. 어떤 장소로 가든 나는 결국 다시 그 자그마한 섬으로 돌아갔다.
고립은 서서히 일어났다. 나는 그게 고립인 줄도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 학교를 다녔음에도, 성인이 된 이후 집이 아닌 곳에서의 생활을 경험함에도 고립됨을 느꼈다. 평생을 그렇게 지냈으니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고, 당연한 외로움과 고립에 침잠되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 나와 아빠가 가까워지지 못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엄마가 가족 사이에서 나를 배제하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가족들 사이의 꽤 많은 정보들이 나에게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너는 왜 모르냐고, 아까 다 있을 때 말했잖아’라며 다그쳤다. 되짚어보면 분명 나는 그 장소에 없었는데 엄마는 항상 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니가 기억을 못 하는 거지.’, ‘내 말은 항상 귓등으로도 안 듣지. 엄마가 우습니?’, ‘내가 하는 말은 맨날 기억 안 난대.’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 없을 때 말했잖아, 라는 의문도 한두 번이지. 너무나도 당당한 엄마의 말에 결국 나는 내 기억력을 탓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갑자기 가족 일정이 생겨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도, ‘내가 또 기억을 못 하는구나. 나는 왜 자꾸 잊어버리지?’ 하며 속으로는 나를 탓하면서 겉으로는 들은 척, 아는 척을 했다.
중고등학교 어느 시기를 떠올리면 늘 나만 빼고 가족들이 TV 앞에 앉아 재미있게 시청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 장소에 존재하면 안 되는 옳지 않은 존재라고 느꼈다. 나만 사라지면 우리 가족은 완벽해질 것 같았다.
엄마는 항상 ‘넌 방에 가서 공부해야지.’, ‘너 ~했어? 그거 하러 방에나 들어가.’ 등등. 다양한 말로 가족들이 TV를 시청할 때마다 나를 방으로 보냈다.
나는 TV를 떠올릴 때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TV 시청을 하는 뒷모습을, 방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구경하다가 엄마가 몸을 살짝이라도 움직이면 들킬까 봐 재빨리 방 안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던 어린 내가 늘 생각난다.
집에서 가족들이랑 밥을 먹다가도, 혹은 어디 다 같이 외출한 장소에서 엄마는 직접적으로 나를 배제하거나 밀어내는 말을 했다. ‘너는 나를 하나도 안 닮았어.’, ‘공부나 하러 들어가.’, ‘시끄러워 조용히 해.’ 혹은 내 말을 무시하고 대꾸하지 않는 방식 등등 엄마는 이런 말과 행동으로 가족에게서 나를 배제했다.
엄마와 대화할 때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빠(혹은 동생)는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건 니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이지’라고 하거나, 대화를 하다가 내가 동생이나 아빠를 언급하면 엄마는 자꾸만 그들의 존재를 없앴다. ‘아빠와 동생은 너가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지 않아. 다 니 머릿속에만 있는 거란다. 그런 생각은 다 틀렸어. 그리고 사실 그들은 니 삶에 없는 사람이야.’ 엄마는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주입했다.
가족들 사이에서 내 존재를 사라지게 하거나, 내 삶에서 동생과 아빠를 사라지게 하는 것. 이런 상황을 계속 겪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나는 동생과 아빠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를 만큼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실제로 그 환상을 믿진 않았지만 계속 주입되는 엄마의 말에 자고 일어나면 정말로 이 집에서 엄마와 나만 단둘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정보는 언제나 제한적이었다. 3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MP3, 전자사전, 핸드폰 등 전자기기에 제한을 가했고, TV는 늘 꺼져있거나 나에게 작동시킬 자격이 없었다. 책도 제한적이었다.
TV를 볼 수 없고, 컴퓨터를 할 수 없고…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또래 친구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 노는 게 힘들었던 건 너무 당연했다. 그런 정보를 알고 있어도 치열한 게 또래 친구 문화인데.
거기에다 엄마는 책을 사주기도 했지만, 소설책은 절대 사주지 않아서 나는 학교나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읽을 때도 적당히 눈치껏 숨겨서 읽어야 했다. (나는 주로 소설, 어릴 땐 판타지 소설을 빌려 읽었다. 엄마는 항상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외부 정보도 제한적이었지만, 물리적인 장소도 제한적이었다. 학교와 집 외에 갈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암묵적인 규칙으로 나는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야 했다. 학교가 몇 시에 마치는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다 알고 있는 엄마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아니, 이건 속이는 것 자체도 의미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걸 할 방도가 전혀 없는 꽉 막힌 규칙이었으니까.
이걸 엄마에게 언급한다면 “누가 친구랑 놀다 오지 말라고 했니?”라고 말을 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주번을 맡은 날(한 학기에 한두 번 문을 잠그고 가야 하는 날)이나, 번호대로 돌아가면서 하는 청소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늦게 왔다고 혼이 났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20대를 보내는 내내 똑같았다.
대학에 다닐 때도 엄마는 수업 시간표를 알려줄 때까지 닦달했고, 개강 총회와 같은 학교 일정이 있어도 얼른 집으로 오라고 전화했다. 약속에 나가면 누구랑 언제, 어디서, 뭘 할 건지 보고를 해야 집 밖으로 나설 수 있었고, ‘일찍’ 들어오라는 소리는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저녁 6시, 7시만 넘으면 전화에 불이 났다. 어떤 날은 외출하는 나를 엄마에게 설득해야 했다. 그래야만 외출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외출하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다. 외출하는 이유 그 자체를 설명해야 하는 것. 친구의 생일 파티라거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는 약속이라거나. 그게 뭐가 되었든.
언제 한 번은 친구와 집 앞(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논다고 말하고 나가서 놀고 있는데, (집 근처니까 좀 더 늦게까지 놀다 올 거다, 거기 가게 알지? 거기서 놀 거라고. 하고 나갔다) 엄마는 7시부터, 8시, 9시, 10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계속 전화를 했다.
그렇게 연락을 해댔고, 엄마는 자기가 그렇게 연락했으면 어련히 집으로 들어와야지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이런 식이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늦게 들어올 생각이면 아예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냥 아예 확 늦어버려. 그래야 부모님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오면 잘 들어왔니? 한다고.’라는 말을 여러 친구에게 들었지만, 엄마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후 6~7시부터 전화를 하는 사람인데, 그나마 성인 이후엔 학교가 멀어서 8~9시까지도 ‘오늘은 봐줬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 문제로 엄마와 매번 다퉜다… 다퉜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몇 시간씩 욕을 먹었다. ‘일찍 오는 게 그렇게 어렵니!’, ‘10시는 무슨, 8시까지 들어와!’, ‘낮에 해 떠 있을 때 다니지 왜 늦은 시간에 다니냐.’
나는 여러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한결같이.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의 엄마와 다퉈야 했다. 이쯤 되면 먼저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이, 지친 사람이,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그냥 밖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너무 많이 지쳤기 때문이었다.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엄마는 ‘왜 집에만 있고 밖으로 안 나다니냐’라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밖으로 나다니면서 듣는 잔소리보다는 잔소리의 총량이 적었고, 핸드폰도 조용했다. 계속 내가 집에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해졌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서.
나는 그렇게 외출도 포기하게 되었다. 포기하는 건 언제나 쉬웠다. ‘나’라는 존재를 버리면 그런 것들은 너무도 쉽게 된다. 의욕도, 욕심도, 열의도. 지친 마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게 나는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점점 고립되었다.
엄마의 말로 구성된 나의 존재는 나를 버려야 숨이라도 쉬며 생명을 붙들어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숨만 쉬며 제대로 된 외출을 하지 않고 몇 년을 보냈던 기간이 있다. 그 시기에 나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머리에 힘을 주고 기억해 내면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안개가 낀 듯 기억이 너무나 부옇게 흐려서 그게 기억인지 꿈인지 나인지 내가 아닌지 구분을 할 수 없어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서서히 심리적, 물리적으로 고립된 섬에 갇혀 평생을 보냈다. 외딴 작은 섬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한 명 없는. 나 자신도 나를 잃은 상태로 몇 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