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통치하는 세계
엄마가 나를 통제하기 위해 엄격했던 가장 큰 두 가지를 꼽으라면 ‘장소’와 ‘시간’이었다.
엄마는 이 두 가지를 통해 아주 잠시라도 내가 자신의 손바닥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했다.
이전 장에서는 ‘장소(집-밖)’, 이번 장에서는 ‘시간’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무 자르듯 반으로 쪼갤 수 없지만 장소와 시간이라는 각 틀에 맞춰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엄마는 늘 시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저 ‘(집 밖의 일정이)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이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나는 아무리 빨리 집으로 뛰어 들어가도 속절없이 혼이 났다.
중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을 때였다. 나는 수업이 끝난 뒤 도서부 활동을 마치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오후 3시에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엄마한테 늦게 들어왔다고 혼났다.
동아리 활동이 아니더라도 학교가 끝나고 잠깐 화장실을 갔다가 집에 간다거나 종종 학교에서 청소를 하거나 주번을 맡았거나 행사가 있을 때면, 평소보다 10~20분 정도 늦게 집으로 출발하게 되는데, 엄마는 집에 바로 오지 않았다며 나를 혼냈다. 늦게 온 이유를 설명해도 그사이에 헛짓거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아냐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갔다. 다른 길로 새서 뭘 하다 온 건지 솔직하게 말하라고.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학교에서 평소보다 일찍 끝나서 친구와 잠깐 놀았는데, 그 사이 엄마는 부재중 전화를 수십 통 남겼고, 부재중마다 음성사서함을 남겼다. 야, 왜 안 들어와?, 지금 어디야?, 제정신이니?, 너 집에 들어오면 죽을 줄 알아. 등등
그날 나는 엄마의 음성사서함 메시지를 하나하나 듣고 겁에 질린 채 마음을 졸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오후 2시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땐 학교가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 엄마가 알 수 있지만, 대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 시간표를 짜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엄마는 나의 수업 시간표를 원했고, 교통수단을 통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절대 직접 알아보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시간표를 준다 한들, 엄마가 수업 시간을 피해 전화를 하는 건 아니었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그날 집에 갔을 때 자기 전까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므로, 수업 중 조용히 나가서 전화를 받기도 했다. 시간표를 줬는데 왜 그걸 확인하지 않고 연락하냐는 나의 말에 엄마는 ‘수업 중이었니? 그럼 안 받으면 되지.’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 때는 학과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엄마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일찍일찍 다니는 게 그렇게 힘드니?’ 하고 나를 다그쳤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개강 총회를 하고 식사를 하고 집에 올 거라고 시간 별로 세세하게 일정을 미리 알려줘도 엄마는 언제나 전화를 했다. 식사하러 자리를 옮기던 시간은 6~7쯤이었고, 이제 막 숟가락을 떠서 밥을 먹으려는 나에게 엄마는 ‘집에 오고 있니?’, ‘어디까지 왔니?’라고 했다.
학창 시절에도 그러긴 했지만, 대학에 다닐 때는 정말 신데렐라였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었으므로 수업이 끝나면 나는 그대로 강의실을 뛰쳐나와 집으로 가는 통학 버스 번호표를 받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늘 마음을 졸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차라도 막히면 절망을 느꼈다.
엄마에게 집에 간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한들, 엄마는 집에 가면 똑같은 말로 나를 맞이했다. ‘좀 일찍일찍 다녀라.’
가끔은 그렇게 마음을 졸인 나의 속과 자신은 전혀 관계없다는 듯 ‘얼른 씻고 방에 들어가라(혹은 밥 먹어라).’라고 했다.
나는 집 밖을 나설 때면 그날그날 달라지는 ‘엄마 마음대로 통금시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고, 집이 아닌 장소에 있을 때면 엄마에게 전화가 올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언제 올 지 모를 전화가 울리기 전에 ‘빨리’ 집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사고 강박이 생겼다.
이 강박은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사고 강박에서 점차 확장되어 엄마가 아닌 타인과의 교류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강박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를 괴롭혔다.
언제나 빛을 보면 달려드는 나방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집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일정이나 약속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얼른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언제나 버스와 전철 시간표를 확인하고 어떤 경로로 가야 제일 빨리 집에 갈 수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봐야 했다.
사람들과의 자리가 즐겁고 재미있어도 더 놀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떠올려서도 가져서도 안 되었다.
자연스럽게 드는 그런 마음을 없앨 수 없으니 차라리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게 나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약속을 만들 일도 없고, 놀다가 아쉬운 마음이 들 일도 없고, 상대에게 미안해질 일도 없으니까.
이런 생각은 나를 또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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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