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제 발로 들어가는 감옥

그가 통치하는 세계

by 은현


"별 5개짜리 감옥에서 매들린은 그녀가 괴물이고, 버릇없고 성격이 모났으며 게으르고 뚱뚱하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며 성장했다."

『생존자들』 4부_안녕, 괴물아_강박장애·가스라이팅(매들린 이야기)_에필로그 中



어쩌면 어린 나이에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그럼에도 내가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자라는 동안 머물러야 하는 곳이 ‘집’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집을 늘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을까.



집은, 들어가면 다음 공적인 일과 전까지 나갈 수 없는 감옥이었다. 학교를 가거나 약속이 있거나 엄마를 납득시킬 합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

저녁을 먹고 가볍게 집 앞의 편의점을 가는 것도, 선선한 저녁 산책을 나서는 것도 너무 많은 실랑이가 필요했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연극부가 끝나고 도서부가 끝나고 친구와 약속에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현관 앞에만 서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문 앞에서 습관적으로 손가락이 숫자 버튼을 향하다가도 가끔은 몇 번씩 망설이며 손가락을 바닥으로 내렸다.

어떤 날은 그 자리에 서서 몇 분 동안 가만히 도어락 숫자를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문 앞의 작은 복도 공간을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어떤 날은 계단을 통해 다른 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다 다시 문 앞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찰나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손을 올려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땐,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답답한 마음도, 걱정되는 마음도, 오늘 하루가 즐거웠든 행복했든 슬펐든 힘들었든 그런 것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중학생 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2년 정도 살았던 집이 있는데, 그 집은 검고 짙은 블랙홀이나 굶주린 짐승 같아서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빨려 들어가듯 집어삼켜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밖을 나설 때면 집이 나를 토해내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갈 때면 다시금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집에 살 때 집안 분위기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서 정적이 낮게 깔려있었다.

현관문을 열어 집 안에 발을 내디디면, 내 머리 위 혹은 시야의 대각선 위쪽으로 교수형 줄이 보였다. 그 동그란 모양의 줄은 집 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보였고,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유령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실제로 보였다기보다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불안정한 엄마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내 마음이 그만큼 절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던 시기도 보냈다. 이른 등교와 늦은 하교로 집에 붙어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2년이나 살았던 집이지만 2년만큼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집에 살았을 때를 떠올리면 생각이 잘 안 난다. 특히 집 구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집에 살 때 내게 허락된 공간은 내 방과 화장실, 그리고 밥 먹을 때 부엌 정도였기 때문에 안방이 어땠는지, 거실이 어땠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부엌의 경우는 허락된 공간 중에서도 내 방이나 화장실처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밥 먹을 때와 엄마가 쏟아내는 말을 들어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갈 수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울렁이는 이미지처럼 구조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하는 감옥이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고 화장실도 있고 내 방도 있고 갈아입을 옷과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있는 별 다섯 개짜리 창살 없는 감옥.

이 감옥에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너 때문이고, 너는 성격이 나쁘고 게으르고 타인을 무시하고 이기적이며 눈치가 없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자랐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