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깨우는 사람 마음

그가 통치하는 세계의 규칙

by 은현

그가 통치하는 세계의 규칙

[p88]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있는 가정은 몇 가지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아이들도 그 규칙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우기는 하지만 규칙 때문에 부모와 친밀감을 형성할 수가 없어서 끊임없이 혼란에 휩싸이고 힘들어한다. 이 규칙은 매우 은밀해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특별히 가르쳐주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규칙이 결국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영역을 없애고 부모 마음대로 아이들을 이용하고 혹사시키는 비극을 낳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_캐릴 맥브라이드, 오리진하우스)



[깨우는 사람 마음]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 중 하나.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

내가 어릴 때부터 20대가 끝날 때까지 엄마는 나를 깨웠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항상 엄마의 마음대로였다.

학교 다니는 평일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주말도 방학도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없었으니, 늦잠은 어림도 없었다.

스스로 알람을 맞춰 일어날 시간을 정해도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항상 나의 알람보다 먼저 깨우거나, 내 알람을 듣고(혹은 알람이 울릴 즈음) 내 방에 들어와서는 나를 깨웠다.


엄마는 나를 깨울 때 방 밖에서 ‘좀 일어나!’ 혹은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쳤는데, 내가 한 번에 일어나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셋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쳐들어간다.’라고 협박했다.

주말에는 입버릇처럼 아빠가 화났다며 혼나기 전에 일어나라고 겁을 주면서 깨웠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빠는 실제로 화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아빠가 정말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크고 나서 이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그려보면, 아빠는 아주 가끔 엄마의 명령 같은 잔소리를 듣다 못 이긴 나머지 마지못해 나를 깨우러 내 방에 들어왔다. 그마저도 내가 일어나든 말든 모르겠고 ‘일어나라’ 한 마디 하면서 깨우는 시늉만 하고 다시 방을 나갔다.


엄마는 일정한 시간에 나를 깨우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전날 깨운 시간보다 더 늦게, 어떤 날은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나를 깨웠다. 그러고는 늘 마지막에는 자신이 화내기(혹은 깨우러 가기) 전에 일어나라고 협박을 했다. 깨우는 시간이 매번 미묘하게 달랐으니 언제 일어나야 혼나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어도, 맞춰 둔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내가 일어나야 할 기상 시간은 엄마가 나를 깨우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나를 깨울 때는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내 방 밖에서 말로 깨우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많았다.

엄마는 분무기에 물을 가득 채워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일어날 때(침대에서 나올 때)까지 얼굴에 물을 뿌린다거나, 일어날 때까지 옆에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잘 때는 문을 완전히 닫거나 반쯤 닫는 것이 허용될 때도 있었다― 들어와서 ‘안 일어나?’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했고, 내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이불 위로 손이나 주먹이 날아왔다.


늦잠을 자고 싶은 날도, 피곤한 날도, 몸이 안 좋은 날도, 그저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엄마 앞에서 그런 사정은 모두 소용없었다.

인턴을 시작했을 때 나는 제 시간에 일어나 스스로 잘 챙겨 나갔음에도, 아침마다 엄마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일어났냐?’라고 한마디 했다. 가끔은 ‘좀 더 빨리빨리 일어나지.’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나는 엄마 앞에만 서면 ‘아침마다 깨워주는 엄마의 노고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자격 없는 딸이었다.

나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면 좋지’, ‘늦잠 안 자면 좋지’, ‘주말에 늦잠 안 자고 일찍 일어나면 좋지’,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깨워주는 건데’, ‘엄마가 나를 위하는 건데’, ‘엄마가 나를 위해서…’ 등등, 내가 직접 생각한 건지 주입된 건지 모를 생각들을 강박적으로 되뇌었다.


그때의 나는 정신없는 아침의 비몽사몽한 시야와 분무기로 인해 축축해진 얼굴 사이로, 아침마다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나를 깨워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엄마의 모습은 설명할 수 있다.

엄마는 한 손에는 분무기를 들고, 혹은 이불 위로 내지르던 손을 거둔 후, 자신은 엄마로서 딸의 바른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나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방을 유유히 떠나는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