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통치하는 세계의 규칙
인간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 중 하나. 생존과 연결된 행위. 즉 음식을 섭취하는 것. 섭취한 음식으로 사람은 살아간다.
나에게 ‘식사’가 가진 의미는 딱 하나였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밥을 먹는 것은 그날그날 해내야 하는, 그리고 해치워야 하는 엄마의 암묵적인 규칙(과 규율) 중 하나였다.
내가 직접 밥을 차려 먹는 것도 금지였다. 그것도 암묵적인 규칙. 부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이 규칙은 일정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때때마다 미묘하게 변형되는 정답을 맞혀야만 하는 문제였다.
양육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골고루 균형 잡힌 식단을 챙겨주는 것은 하면 안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줌으로써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양육자의 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초등학생 때였나? 그 시기의 식탁에서는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엄마가 지정한 반찬 3~4가지를 ‘무조건’. ‘엄마가 덜어주는 만큼’을 ‘다’ 먹어야 했다.
주로 ‘콩’, ‘멸치’, ‘시금치’, ‘미역 줄기’, ‘우엉’, ‘번데기’, ‘콩나물’이 해당했다. 시기에 따라 3~4가지 반찬들이 돌아가면서 ‘정해진 반찬’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이 반찬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고파도 고프지 않아도,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겨도 '반드시', '언제나' 엄마가 ‘지정한 식사 시간’에 ‘무조건’, ‘정해진 반찬’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는 점은 예외가 없었다.
나는 먹는 양은 적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학교 급식에 그 어떤 반찬이 나와도 골고루 잘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반찬을 따로 챙겨주지 않았더라도 골고루 잘 먹었을 텐데.
앞서 말했다시피 자라는 아이에게 균형 잡힌 식단은 중요하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양의 똑같은 반찬을 엄마가 밥 위에 올려주거나 접시에 덜어준 것을 끼니때마다 뱃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이런 행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강제성은 조금씩 변형되어 몇 가지 점이 이어졌다. 성인 이후 정해진 반찬을 배식하는 방식은 사라졌지만 ‘엄마가 지정한 시간(혹은 상황)에’, ‘무조건 식사를 해야 한다’, ‘무조건 먹어야 한다’라는 점이 이어졌다.
전날 과식했다거나,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그냥 배가 고프지 않은 날 등등 다양한 이유로 조금 늦게, 혹은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점심을 건너뛴다거나 더 이르게 먹어야 할 수도 있는데, 예외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한참 동안 입씨름을 해야 했고 나는 매번 졌다.
20대의 어느 날 나는 오전에 외출했다가 점심쯤 돌아왔다. 속이 안 좋아서 점심을 거르고 싶었는데 엄마가 주먹밥을 만들어놓았으니 먹으라고 했다. 나는 '지금은 속이 좋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으니 조금만 있다가 먹겠다.'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먹으라고 계속 종용했다.
나는 ‘지금은 배가 고프지도 않고 속이 안 좋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먹겠다.’라고 앵무새처럼 한 번 더 말했고, 엄마는 그런 나의 말을 자르고 곧바로 자기 말을 이었다. 자기가 지금 외출할 건데 자신이 나가기 전에 다 먹으라고 강압적으로 강요했다. 그렇게 한참을 같은 대사로 도돌이표처럼 실랑이했다.
나는 속이 안 좋았던 만큼 그 이상 입씨름 할 힘이 없었다. 그저 빨리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실랑이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나는 또 엄마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항복했다. 그렇게 주먹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뜻대로 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걸 확인한 후 나갔다. 엄마가 나가고 나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속이 더 심하게 울렁거리더니 결국 나는 모든 걸 게워 냈다.
나는 언젠가부터 밖에서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서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체하는 것보다 나았고, 먹고 싶지 않을 때 먹지 않을 수 있었고,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합법적(엄마의 규칙 속에서)으로 집에서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는 위의 경험도 영향이 있었지만, 그 외에 쌓이고 쌓여왔던 먹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나는 밥을 먹을 자격도 없다’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터라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밥을 먹지 않게 된 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너는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밥 먹을 생각도 하지 마.”, “밥이 넘어가니?”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 중 ‘밥이 넘어가니?’라는 말은 엄마의 감정이 한바탕 나와 엄마 사이를 휩쓸고 지나간 뒤, 식사 시간이 돌아왔을 때 자주 들었다.
나는 ‘엄마, 밥 안 먹어?’라는 말로 적막을 깨는 편이었다.
엄마는 그 말이 늘 우스갯소리라며 ‘너는 실컷 혼나고도 밥 언제 먹냐는 소리가 나오니?’하고 비웃듯 나에게 말하고, ‘얘는 실컷 혼나고 나서 그런 말을 한다니까요.’라며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 때 꼭 내게 들리게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두들겨 맞거나, 폭언을 듣고 난 뒤 나를 차갑게 대하는 엄마를 견디기 힘들었다. 어떤 말을 건네도 엄마는 나를 무시하고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상태의 엄마에게는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방금 엄마를 화나게 한 상황을 다시 만들어낼까 봐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어린 내가 분위기를 전환 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곤 ‘밥 안 먹어?’라는 말밖에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꺼내야 했던 이 말은, 엄마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지도 않고 그대로 굳어버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깨고 엄마를 부엌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가 한바탕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덮어쓰고 나면, 이후 이어지는 차갑게 가라앉은 적막감과 싸늘함이 감도는 분위기를 견뎌내야 했다. 이런 상황은 주로 학교에서 돌아온 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자주 벌어졌기 때문에, 내가 ‘밥 안 먹어?’라는 말을 꺼내지 않으면 엄마는 우두커니 앉아 숨이 막히는 긴장감을 분위기가 깨질 때까지 그대로 유지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무시하던 엄마는 내가 ‘밥 안 먹어?’라는 말을 꺼내야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렇게 부엌으로 간 엄마가 밥을 차려주는 시간이 곧 식사 시간이었다.
20대의 어느 날. 명절에 할머니에게서 유통기한이 5년도 더 지난 김을 받았을 때, 엄마는 ‘이 김을 다 먹기 전까지 새 김을 사주지 않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연히 김은 상태가 안 좋았고, 나는 ‘최근에 구매한 새 김 먹고 이거는 버리자’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버릴 수 없다'라고 했고, 아빠에게 복수해야 한다면서 그 김을 다음날부터 밥상 위에 꼭 올려놓았다.
그러다가도 내가 몰래 버리고 새 김 먹자고 했을 때 엄마는 ‘너 할머니가 준 김 안 먹어? 아빠한테 혼난다? 이거 다 먹어야지 새 김 먹을 수 있어.’라며 앞뒤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김을 버리지 않는 다양한 핑계를 댔다. 그러고는 당부하듯 "먹어. 이거 다 먹을 때까지는 절대 새 김 뜯지 마."라며 내 눈앞에다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장 볼 때 늘 전장 김을 구매했기에 김을 잘라먹어야 했다. 잘라놓은 김이 있으면 다들 조금씩 먹긴 했지만, 누군가 잘라놓은 김이 없다면 다들 안 먹었다. 그리고 그즘 집에서 김을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나는 전장 김을 자르는 역할이었고, 거의 혼자 김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그 김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때 ‘정해진 반찬’은 ‘5년도 더 묵은 김’이 되었다. 나는 명절을 보내기 전에 사 왔던 새 김 대신 5년이 훨씬 넘게 묵은 기름에 절은 김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몇 달 뒤 엄마는 남은 김을 전부 버렸다. 그사이 새로 산 김의 유통기한도 지났다.
억울했던 나는 김을 버리고 있는 엄마에게 '할머니한테 김 받기 전에 새 김 샀으면서 그건 못 먹게 하고. 요즘 집에서 나 혼자 김 먹는 거 알면서. 그러면 그 기름에 절은 김을 나 혼자만 먹을 텐데. 엄마도 안 먹었잖아. 이렇게 버릴 거면 왜 진작 안 버렸어.'라고 말했지만 내 말은 그대로 무시당했다. 내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엄마는 안 들리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동문서답으로 할머니를 욕했고, 아빠를 욕했다.
나는 한동안 김을 먹지 못했다. 김만 떠올리면 그때 먹었던 오래 묵은 기름의 냄새와 맛, 그 기름에 푹 절어 있던 김 냄새와 눅눅한 식감이 생각났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 요새 왜 김 안 먹니? 김이라면 죽고 못 살던 니가?'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밥 먹는 행위가 일상을 유지하고 꾸려나가는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 되면,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한 채 그저 처리해야 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점이 지속되면 생존과 연결된 수단 하나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식사 시간 전에는 언제나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가득한 엄마의 심리 줄다리기에 응해야 하거나, 식사를 할 때는 규칙과 규율이 난무하는 엄마의 세계에서 지켜야 하는 각종 전제들을 알아맞혀야 한다거나,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한다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더라도 부엌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거나, 반드시 엄마가 원하는 식사 시간과 정해놓은 메뉴를 먹어야 한다거나 등등.
식사보다 더 중요한 위치로 올라간 생존 수단은 엄마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었기에, 나에게 ‘밥을 먹는 것’은 그저 이런저런 상황 속에 적응해야 하는 규칙 중 하나였다.
매 식사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배가 고픈지 아닌지 나의 상태를 느낄 새도 없이, 마감 기한이 있는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처럼 ‘먹고 치운다.’라는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식사를 처리했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배가 고픈 상태가 정확히 뭔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 이 부분도 너무 익숙해서 이게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