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너 때문이야. / 너한텐 그런 대접이 어울려.

그가 통치하는 세계의 규칙

by 은현

모든 것은 다 너 때문이야. / 너한텐 그런 대접이 어울려.



[모든 것은 다 너 때문이야]


무슨 일이 생기든 그 모든 것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내가 잘못했고, 혹은 나의 잘못 때문에 벌어졌고, 그래서 나의 책임이었다.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도, 친가에서 엄마가 부당한 일을 당한 것도, 오늘 엄마의 기분이 나쁜 것도, ‘집안 꼴이 이 모양’이 된 것도, 엄마가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오늘 만든 음식이 별로인 것도, 빨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학교에서 내가 억울한 일이 있었더라도.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모두 다 내 탓이었다.

내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언제부터 엄마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학교라는 사회에서 학년이 올라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궁금한 것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다거나 고민이 생겼음에도 나는 언제부터 말하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니가 잘못했겠지.”였다.

학교 다녀오면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는 암묵적 일과(7-3에서 언급했던)에서 엄마는 종종 “요즘 학교에서 뭐 하니?”라고 물었다. 가끔은 캐묻듯 “너는 도통 학교 얘기를 안 하니?”라고 묻기도 했다.

나는 제대로 된 엄마의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늘 혼자 고민하다 엄마가 캐묻듯 물어볼 때면(대답하기 전까지 식탁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아주 가끔 친구 고민을 이야기했다. 고민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항상 “니가 잘못했네.” 혹은 대충 듣다가 내 말을 자르고 “니가 잘못했겠지.”, “니가 제대로 행동 안 해서 그러겠지.”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친구들과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싸운 친구들을 어떻게 다시 화해시킬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묻는 것 대부분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엄마는 내 말에 늘 그런 답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제외하고 가끔 큰 사건이 생길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가 실내화 가방을 휘둘러 내 머리를 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도 엄마에게 ‘니가 잘못한 게 있겠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학부모님들 오시니 중앙계단을 이용하지 말고, 끝쪽 계단을 이용하라 해서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한 층 아래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친구들과 빼꼼 쳐다보니 6학년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계단에서 벌청소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니 그 학생은 나와 친구들이 계단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서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대치를 하다 중앙 계단을 이용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친구들과 함께 그 6학년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내려가려 했다.

6학년은 벌청소도 짜증 나는데 한 살이나 어린 애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음에 화가 났던 건지, 들고 있던 대걸레의 걸레 부분으로 내 어깨와 이어진 얼굴 한쪽을 후려쳤다. 나는 당황해서 그대로 얼이 빠진 상태로 구석에 몰려 홀로 그 6학년 학생에게 위협을 당했다. 남학생은 근처에 있던 자기 친구들까지 불러와서 나는 순식간에 6학년들에게 둘러싸였다.

나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대치 상황을 견뎌냈고, 그사이에 내 친구들이 선생님을 부르러 가자 그 모습에 6학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날 나는 공격과 위협을 당해서 무서움을 느낀 것보다 그 상황에서 6학년의 위협에 굴하지 않은 나를 용감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보는 순간, 상대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대걸레로 얻어맞은 게 억울했고, 축축한 옷 때문에 휘두른 대걸레에 맞은 어깨와 얼굴이 속상했고, 6학년이 자기 친구들을 몰고 와서 5학년짜리 한 명(친구들 중에서 나한테만 그랬다)을 겁주겠다고 나를 둘러쌌던 상황이 떠올라 무서웠던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는 엄마에게 울면서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말했다.

나의 말을 듣던 엄마는 “니가 잘못했네.”, “뭘 그런 걸로 울어.”, “걔가 사춘기였나 보지. 니가 이해해.”라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잘못한 사람이었다.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도, 친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엄마는 늘 ‘니가 뭐 잘못한 게 있겠지.’라고 말했다.



어릴 때는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엄마가 직접적으로 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른 방식으로 ‘탓’을 돌리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은 너가 만든 거잖아. 니가 나랑 싸우지만 않았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됐고, 내가 화를 낼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너는 나를 화내는 나쁜 엄마로 만들었어.”라는 방식으로.

엄마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이리 와 봐라. 얘기 좀 하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오늘 대화에 따라 니랑 내랑 어떻게 될지 결판을 내자. 말해봐라. 싸운 거에 대해 할 말 없냐. 니가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냐. 나는 (너 때문에) 너무 실망했다.’ 엄마는 일방적으로 소리 지르고 화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해놓고서 우리가 ‘같이 싸웠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가 싸운 이유는 항상 ‘나’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고, 혹은 자신의 행동은 자기가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너’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엄마는 자신이 어떤 파괴적인 행동을 해도 그렇게 자신이 행동한 이유는 전부 ‘너’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잘못해서였다.

엄마 앞에만 서면 나는 언제나 죄를 지은 사람이 되었다.






[너한텐 그런 대접이 어울려]


학교에서도 엄마와의 관계를 반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을 골라서 사귀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나의 인간관계가 그런 패턴이 된 것 같은 것은 오래전에 인지했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이붓듯 말하는 엄마에게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니, 나는 모든 일이 나 때문에 벌어졌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 생각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그때는 뭐가 이상한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잘못을 하는 사람이라서 모든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나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상대가 나에게 그 어떤 태도나 행동을 취하든 상대가 옳았다.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 그건 다 옳은 행동이 되었다. 그런 게 당연한 세계에서 나는 살아왔다.

자신이 벌이는 행동이 언제나 옳은 ‘엄마의 세계’에 살고 있던 나는, 당연히 엄마가 나에게 행한 모든 행위에 ‘잘못’, ‘옳지 않음’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나쁜 행동을 하게끔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고, 내가 잘못해서 혼나는 것이고, 나의 존재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하니까 받는 거라고.




한때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이 지내던 아이에게 한 번은 “너는 만만해 보이는데 대화하다 보니 만만하지 않네.”라는 말을 들었다. 나를 만만하게 보았던 그는 친구 사이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다양한 말을 나에게 쏟아내기도 했다.

그가 했던 말 중 내가 드문드문 이상하다고 여겼던 말이, 정말 이상한 말이라는 걸 지금은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그가 쏟아낸 말들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들었던 모든 말처럼,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른 한 번은 학창 시절 친구였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그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너는 왜 나보다 성적이 좋아? 고등학교 때는 나보다 못했잖아.” (실제로 나의 대학 성적은 ‘좋다’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다 그 아이는 나와 학과도, 분야도 전혀 달랐다.)

이 말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처음 언급했던 그는 자주 왕래하던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 친구는 학창 시절 함께 시간을 보내던 사이였는데. 그가 여태 나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그 한마디에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나의 인생에 잠시 들어와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건넸던 수많은 모욕적인 말들(위의 예시는 수위 조절을 위해 적당히 골라낸 이야기다)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야. 난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형편없는 사람이 맞거든.’,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 말을 왜 저렇게 하지? 나를 여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이런 양립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친구, 연인, 지인 등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말과 태도는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유사해서, 나는 상대의 태도가 사람 사이에서 통용되는, ‘도를 넘었는지?’에 관해 그 ‘적정 선’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집이 아닌 사회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흡사한’ 사람들과 부단히도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화를 내던 사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하고 모조리 쏟아내던 사람, 지내는 동안 똑같은 에피소드만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하는 사람, 화가 나면 분을 못 이겨 자기 뺨을 때리던 사람 등등.

지금 돌아보면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모습들, 나는 굳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닌 것까지 뒤집어쓰고 끙끙 앓았다.


무의식적으로라도 나를 모욕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판단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존중 받아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알 수조차 없었으니,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을 사회에 나가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을 만나왔다. 그게 나에겐 당연한 것이었고 익숙한 방식이었으며 내가 배운 세상의 전부였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엄마의 “니 말은 아무 근거가 없어”, “아무도 널 좋게 보지 않아”, “거 봐라 내 말이 맞지? 니가 판단하는 건 틀렸다니까?”, “이 세상에 나 말고 너 생각해 주는 사람 없어”,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라는 말에 근거가 되었다.

나의 판단과 직감은 신뢰를 잃고 자리를 빼앗겼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