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통치하는 세계의 그

통치하는 세계의 그

by 은현

[8-1. 통치하는 세계의 그 _나르시시스트일까? 자기애성 성격장애일까?]



“그딴 표정 짓지마. 니 딴엔 얼마나 잘났길래 그딴 표정을 하고 한심한 듯이 쳐다보냐? 내가 그렇게 한심하냐?”

“니가, 니가, 니가! 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무시하지 마. 나 무시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니가 이래서 내가 우울증 걸리게 생겼어!”

내가 엄마의 폭행과 폭언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엄마가 자주 말하던 한결같은 대사였다. 겁에 질린 나의 표정이 엄마의 눈에는 자신을 무시하는 표정으로 보였던 걸까.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인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적대적인 표정과 말투로 상대방을 대할 때가 많은 반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어조나 어투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면 못 견뎌 한다. (…) 나르시시스트는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조롱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주위를 살핀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해올 대상이라고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애인이나 가족도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진심 어린 태도로 자신에게 찬사를 표현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 Chpater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中)




사람은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보를 얻고, 감정을 배우며, 사회의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나를 둘러싼 환경과 그 속의 ‘나’라는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이 ‘나’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정의되기도 하면서 ‘정체성’이라는 부분이 점점 견고해져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


엄마는 내가 독립된 인격체로 나아가는 모든 성장 과정을 방해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벗어나 독립된 개체로 나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 텐데, 내가 조금이라도 독립된 경계가 생기려 할 때마다 엄마는 그 경계를 허물고 부쉈다. 그러면서 “지만 아는 년”이라는 말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이기적인 년’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나의 과거 기억과 엄마의 행동 사이에 관해 알게 되는 정보가 늘어갈수록 어린 시절의 물음표들이 아주 조금은 해소되었다. 엄마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으면, 엄마는 나의 그 어떤 행동도 비난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엄마는 자신의 말에 내가 긍정적인 대꾸를 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한다고 받아들였던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에게 ‘아니요’라고 말하거나 행동했던 모든 순간에 혼이 났다. 그러니까 엄마의 각종 규칙과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혼이 났다. 그리고 내가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그런 모습을 내보이는 순간마다 혼이 났다.


어린 시절 핸드폰이 부서진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에게 모든 시간을 쏟지 않고 친구와 문자로 수다를 떨어서. 아마도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나에게서 독립된 경계(핸드폰은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수단이자, 정서적으로 엄마와 분리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물건)가 생긴 것을 감지하고 당장 핸드폰을 쓰지 말라고 말했을 테고, 나는 친구와 문자도 못 하게 하는 거냐는 의견을 표했을 것이다. 엄마의 말에 무조건 긍정이 아닌 부정적인 의견이 엄마에게 비난이 되어 다가갔을 테고 그게 엄마를 화나게 했던 거라고 생각해 봤다.

핸드폰은 엄마와 나 사이에 경계(‘엄마가 모르는 나’, ‘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물건이나 존재가 생기는 것’)를 만드는 물건이기에 부순 게 아닐까. 그리고 엄마 마음대로 부수거나 처분해 버린 많은 물건이 이 이유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외에 내가 화장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거나, 지금은 밥을 먹고 싶지 않다거나, 조금만 더 놀다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모두 엄마의 말을 거절한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거절’이라기 보다는 엄마의 모든 말이나 엄마가 정해놓은 규칙이나 규율에, 무조건 ‘네’라는 긍정적인 피드백 없이 다른 제안이나 나의 의견을 표현했을 때였다.

그저 나의 의견을 표현한 상황마저 엄마가 모조리 다 비난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내가 혼이 난 거라면.

이런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엄마가 나에게 보인 모든 행동이 설명됐다.




보통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이란 용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때에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경우여야 나르시시스트 스펙트럼에 들어맞습니다.

[p14]_(『그게, 나르시시스트 맞아』中)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의 개념 안에 포함되지만,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을 정도로 경계선 수준 또는 정신증적 수준의 성격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Chapter1 그 사람은 왜 자기밖에 모를까?中)



나르시시스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단어이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와 연관 있는 단어,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B군 성격장애로 분류되며, B군 성격장애는 정서적이고 극적인 성격 특성을 나타내는 유형이다. 그 안에 ‘반사회성 성격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르시시스트는 성향,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병리적 진단이다.


서문에 밝혔듯,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엄마를 진단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엄마가 어떤 심리적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뿐.

그중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엄마에게 대입했을 때, 평생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설명할 언어가 생겼다. 그리고 타인에게 설명할 언어이기도 했다.


그 두 가지 중 엄마는 어디에 더 가까이 속해있을까. 엄마의 분노 행동(원인과 표출 방식)을 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 같다가도, 관련 특성을 생각했을 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보다는 (내현적 혹은 악성) 나르시시스트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디에 더 가까운지, 정확히 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엔 또 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는 방식은 의미가 없다.


엄마를 상담에 데려가거나 병원에 데려가서 진단받게 할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한쪽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과 무조건 답을 찾겠다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엄마에 관해 정의를 내리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경험한 나의 과거를 기억이 나는 대로 서술하고 엄마의 행동을 설명하는 게 전부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정보와 나의 경험을 연결 지어 보는 것,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이다.








*페이지 수가 기재되어 있는 책은 종이책으로 읽었고, 페이지 수가 기재되지 않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었습니다. 추후 독립출판을 할 때는 종이책 기준으로 페이지 수를 기재할 예정입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