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하는 세계의 그
‘잡히면 죽는다.’
맞을 때 단 한 번도 도망친 적 없는 내가, 그날은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엄마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음성사서함을 확인하고 마음을 졸이며 급하게 집으로 들어갔던 날이었다.
빠르게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고, 현관문이 뒤에서 닫혔다. 추운 날씨 탓에 현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따뜻함이 밀려왔지만, 그 따뜻함을 느낄 새도 없이 온몸으로 파고드는 위험을 감지했다. 신발을 벗다 말고 그대로 뒤돌아 문을 열고 도망치려 했다. 그날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나는 절대로 잡히면 안 된다는 직감에 몸을 현관문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전실 문 쪽에 서 있던 엄마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재빨리 입고 있던 외투에서 교복을 입은 몸만 빠져나와 바로 현관문을 열고 도망치려 했다. 버튼을 누르자 도어락은 소리를 내며 열렸지만, 엄마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서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어딜 가냐고. 현관문 닫으라고. 짧게 명령했다. 내 뒤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몸이 붙들렸다. 그대로 몸이 굳어 하라는 대로 했다. 조금 열렸던 문을 닫고 도어락이 잠길 때까지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었다. 도어락이 다시 자동으로 잠겼다. 엄마는 도어락을 이중 잠금상태로 바꾸라고 했고, 시키는 대로 했다. 도어락 위에 있는 걸쇠를 걸라고 했고, 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도어락 아래 보조 문고리도 잠그라고 했다. 모든 것을 하라는 대로 했다. 나는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스스로 잠갔다. 그대로 끌려 들어가 혼이 났다.
내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엄마는 중문을 잠갔다. 베란다 창을 잠그고, 집에 있는 방문을 하나하나 닫았다. 집 안에서든 집 밖으로든 도망칠 수 있는 모든 문들이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는 제 분을 못 이겨 잠시 나를 두고 부엌으로 가서 부엌에 딸린 라디오를 켜고 음량을 최대로 틀어놓았다. 집 안이 웅웅 울릴 정도의 소음으로 인해 엄마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만 들면 보이는 거실 베란다를 가만히 바라보며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이 나는 와중에 내가 직접 잠가버린 현관문과, 엄마가 잠가놓은 중문과 베란다를 생각했다.
집 안에서 엄마를 뿌리치고 엄마가 나를 다시 붙잡기 전에 잠긴 중문을 열고 나서 내가 직접 잠가버린 자물쇠를 하나하나 열고 현관문으로 도망치는 것과, 안쪽 베란다와 바깥쪽 베란다 두 개의 걸쇠를 차례로 푸는 동안 엄마에게 잡히지 않고 무사히 열어 베란다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것. 두 가지가 각각 얼마나 가능성 있는지 재보았고, 두 가지 방법 모두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말 만일에 하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영영 그날에 갇히게 된다면, 엄마가 한눈팔 때를 노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 힘을 다해 도망쳐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 집을, 엄마를 탈출하고 싶었다.
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걸 포기했을까. 아니면 ‘나’의 일부를 그곳에 버려두고 온 걸까.
나는 가끔씩 기억 속 그날로 떨어진다. 도망칠 수 있는 문이 단 하나도 없는 나의 집으로. 몇 시간인지 모를 시간 동안 두들겨 맞던 그날로. 영원한 시간에 갇혀있는 그날로.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