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하는 세계의 그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분노rage와 화anger는 정확한 의미에서 구분되어 사용하는데, 분노는 화의 감정보다 더 격렬하고 조절이 어려운 감정 상태를 뜻한다. 이에 나르시시스트가 표현하는 감정은 나르시시스틱 앵거narcissistic anger라고 부르기보다 나르시시스틱 레이지narcissistic rage라고 지칭한다. 나르시시스트의 이런 격렬한 분노는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이를 수 있고, 자칫 폭력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폭력은 다른 사람을 때리는 행위는 물론 폭언이나 물건을 던지거나 거울이나 벽을 치는 등 스스로에게 가해를 입히는 행위도 포함된다.
(『나에게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Chapter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_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中)
앞에 나온 모든 문장들에 ‘혼이 났다’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몇몇 문장은 ‘두들겨 맞았다’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두들겨 맞지 않았다면 머리를 쥐어박히거나 팔이나 등, 어깨를 몇 대 얻어맞았다. 가끔은 엄마의 손이나 손가락으로 인해 이마, 가슴, 어깨 등이 밀쳐졌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내지르는 비난이나 욕은 언제나 함께였다.)
나는 거의 매일 맞았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강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걸 ‘맞았다’라고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내 기억상에서도 나는 늘 엄마에게 ‘혼이 났다’라고만 생각했다. 맞았다는 단어를 일기장에 거의 쓰지 않았고, ‘혼이 났다’라는 단어로 바꾸어 기억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몇몇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무의식적으로 ‘혼이 났다’라고 쓰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시대적으로 폭력을 훈육과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둘둘 감싸놓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엄마에게 ‘맞았다’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에 한몫 거든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서도 부모님한테 맞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기에 ‘다들 이 정도는 맞고 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기억이란 건 교묘해서 이해 못 할 경험과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겪게 되면, 살아남기 위해 적당히 미화되고 생존에 불리한 내용은 편집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장면을 머릿속에서 삭제하거나 의미를 축소했다. 그래서 자동 편집된 기억에서의 나는 ‘엄마 말을 안 들어서, 혹은 부족하고 못나서 자주 혼이 난 아이’라고 기억했기에 얼마나 자주 맞았는지,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정확한 기억을 해내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언급된 경험은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쉽게 기억을 해낼 수 있고, 몇몇 사건은 드문드문 일기에 남아있는 ‘맞았다’, ‘얻어맞았다’ 등의 문장으로 기억과 기록을 맞추어보거나, 엄마의 대사가 고스란히 적혀있는 부분으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외의 기억은 잊어버렸는지, 지웠는지, 혹은 기억을 하고 있지만 접근하는 걸 스스로 회피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확신하진 못하겠다.
그럼에도 편집된 기억 속에 기억하는 것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두들겨 맞았다’를 완곡하게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을 포함하는 ‘혼이 났다’를 말한다면, ‘나는 어릴 때 거의 매일 맞았고, 폭언과 비난을 들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폭발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그런 상황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갑자기 아무 일 없었던 사람이 되어 차분해진다. 분노를 쏟아내고 난 뒤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이전의 분노를 내뱉던 사람과 동일한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방금까지 휘몰아치는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고 그와 함께 폭력을 퍼부어놓고서, 엄마는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혼이 나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런 감정의 변화도 무서웠다. 방금까지 감정이 태풍처럼 휘몰아쳐 주변의 것들을 모조리 부숴버려 잔해만 남은 상황 속에서, 엄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하고, 그런 태도 때문에 상황이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엄마는 항상 그런 잔해 속에 나를 내버려두고 떠났다.
엄마는 여러 일을 저질러놓고서는 언제나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는 듯 굴었기 때문에 나는 매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방금까지의 일이 나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인 게 아닐까, 가끔 생각했다. 어지러워진 주변 환경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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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나르시시스트가 격노하면 폭력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피해자를 비난할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관계 수업』 브렌다 스티븐스 - 1장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탄생_제대로 알아야 방어할 수 있다中)
7-4에서 언급했듯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의 잘못이었다.
엄마는 가스불을 올려놓고 외출했던 적이 있다. 잠깐 쓰레기만 버리고 오는 거라 몇 분 안 걸리니까 금방 갔다 온다고 그랬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 엄마는 1층에서 동네 사람을 만나서 잠깐 수다를 떨었나보다. 그 사이 학교에 갔다 돌아온 나는 집 문을 열자마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집 안을 가득 메운 검고 그윽한 연기에 부엌으로 달려가서 가스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연 적이 있다. 그날 엄마는 ‘너’ 때문에 집이 홀라당 탈 뻔했다고 손가락질하면서 온갖 욕을 퍼부으며 나를 혼냈다. “‘너’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라면서.
모든 일은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위급한 상황을 파악하고 가스불을 껐을 뿐인데.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다.
그 외에도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 앞에 언급했는데, 이사를 할 때마다 엄마는 ‘너’ 때문에 이사 간다고 했고, 엄마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도 “니가 햄버거 먹고 싶다고만 안 했어도 지갑 안 잃어버렸어. 어쩔 거야! 너 때문에 잃어버린 거야!”라고 했다.
엄마의 폭발적인 감정 표출은 맹렬한 비난에 가까웠고, 갑자기 시작된 분노는 항상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늘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혼이 났고, 어쩌면 내가 원인이 아님에도 많은 일들에 혼이 났다. 그리고 “‘너’ 때문이야.” 혹은 “‘너’만 아니었어도”라는 말이 언제나 따라붙었다.
어릴 때는 이런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그저 ‘엄마한테 혼났다’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겠지. 엄마는 어른이니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하지만 혼이 난 것과 별개로, 급작스럽게 엄청난 분노를 터트리는 상태의 엄마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다 성인 이후로는 ‘분노 발작’이라는 용어로 일기장에 표현했다.
엄마는 종종 자신의 분노를 못 이길 때면, 부엌 개수대에서 접시나 그릇을 깼다. 가끔은 망치로, 가끔은 그릇끼리 부딪치게 해서. 보이지 않아서 소리로만 추측한 내용이지만.
만약 엄마가 내 방에서 화를 내고 방을 빠져나갔다면, 나는 방에 있다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놀라 몰래 방문 앞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만약 내가 베란다를 마주 보는 전실과 거실 사이에 손을 들고 벌서고 있었다면, 베란다 창에 희미하게 비친 부엌의 모습과 반쯤 잘린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무언가를 내려치는 듯한 모습도.
엄마는 내 방에서 나에게 한바탕 비난과 욕을 쏟아붓고 폭력을 행사한 뒤 방을 빠져나갔음에도, 어떤 감정의 흐름인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급작스럽게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나를 두들겨 패고 방을 빠져나갔다. 이게 가장 흔한 패턴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엄마는 내 방 책장에 각종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채 바닥으로 던졌다. 그렇게 책장 칸칸마다 모조리 쓸어버리고, 책상 위에 있는 필기구나 탁상시계 같은 물건들도 그대로 팔을 휘저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내방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여기에서 화가 다 풀리지 않으면 내 방 밖에서 나를 불러 전실과 거실 사이 한 구석에 무릎 꿇고 손들게 해 벌을 세웠다. 그러고는 유유히 부엌이나 안방으로 자리를 떴다.
이렇게 감정이 폭발했다가 식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몸이 꽁꽁 얼어붙거나, 온몸이 경직된 채 불안 속에 휩싸였다. 그런 시간 속에서 평생을 보냈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난폭한 행동들을 하는 걸 전문용어로 나르시시스틱 레이지(Narcissistic Rage) 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마가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할 때, 그러니까 나의 기억 속 엄마가 갑자기 핸드폰을 수차례 집어던져 부수거나, 주변에 있던 귤과 과도를 마구잡이로 던진다거나, 갑자기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때린다거나, 책장에 있는 책을 마구잡이로 던진다거나, 내가 나의 의견을 표현할 때마다 악에 받친 비난을 하는 행위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행동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이 나이가 들고, 독립을 하고 나서는 ‘분노 발작’이라고 직접 이름 붙인 그 감정에 ‘연극적’이라는 단어가 추가로 붙였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을 표현하고자 붙인 단어라서 전문 용어랑은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엄마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나서야 어린 시절부터 평생 겪은 폭풍 같은 감정에서 겨우 한 발짝 멀어질 수 있었다. 아직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혹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나는 몸이 굳어버리면서 숨이 막히고, 속은 안절부절 불안에 떨고, 입은 딱 붙어 아무 말을 못 하게 되지만, 아주 조금은 그 급류 같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버텨야지, 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은 된 것 같다. 마음처럼 되진 않지만.
그렇게 ‘단 한 발짝’이나마 떨어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 전에는 눈치채지 못한 ‘연극’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밖에 없는 모습이 보였다. 날뛰는 감정 변화와 극적인 감정 표현들. 갑자기 식어버리는 감정에 달라지는 표정과 행동들. 어릴 때부터 느끼던 직감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저 감정들은 거짓되었거나 과장되어 있구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강렬하게 투사했구나. 엄마는 타인에게서 강한 동정심을 요하기 위해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고 힘들고 속상한 사람이 되는구나. 엄마는 타인에게서 강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고 모욕함으로써, 상대가 내보인 부정적인 반응을 통해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구나. 엄마는 타인에게서 긍정이 아닌 의견을 받으면 모두 거절로 받아들여 강하게 감정을 표했구나. 등등. 내가 어릴 때 생각하고 느꼈던 게 맞았구나.
엄마의 모습을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저런 감정에 잡아먹혀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초기 성인기(20대)를 송두리째 빼앗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극적인 면모’. 엄마는 감정이 굉장히 과했다. 어릴 때 엄마가 화가 난 모습을 보며 뭔가 다르다거나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너무 어렸다.
갑자기 드러내는 폭발적인 분노. 그 분노가 나를 향했을 때 무자비한 폭행과 폭언.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갑자기 멀쩡해지는 태도. 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까의 감정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 어린 시절 내내 엄마가 나에게 보인 모습이다.
모든 걸 부숴버리겠다는 듯 분노했던 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혹은 엉엉 오열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딘가에서 드라마나 영화감독의 ‘컷’이라는 사인을 들은 사람처럼 엄마는 감정을 쏟아내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뭔가 묘하게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내가 처음 경험하는 사회는 원가족, 그러니까 가족이라서. 가정 내에서 경험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첫 배움이기 때문에 나의 기준은 가족이었다. 어릴 때 뭔가 이상하다고 저 어디 마음속 직감으로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점이 얼마나 이상한지는 알 방법이 없었고, 그걸 표현할 수단이나 방법도 없었다.
이런 양육 환경 속에서 자라 성인이 된 나는, 엄마가 평생 ‘너가 문제야’라고 나에게 말한 대로, 나 혼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내가 문제였나 봐. 내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졌고, 연극성 성격장애를 가졌고,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에게 보인 모습들은 언제나 극단적이고 극과 극의 감정을 치닫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엔 제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평생을 그렇게 다짐하면서 살아남았다.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지만.
꽉꽉 걸어 잠근 감정으로 인해 언젠가부터 나는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감정 변화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느끼면 감정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와 나를 괴롭혔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면 몸이 떨릴 만큼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운 감정에 휩싸였고, 슬프거나 우울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기쁘거나 즐거우면 잠들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들뜬 감정에 휩쓸렸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 느껴져도 나도 모르게 아무것도 느끼지 않겠다, 혹은 슬픔에 중심을 맞추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기쁘면 균형을 맞추듯 기쁜 만큼 슬픔이 몰려왔고, 두려운 마음이 들면 그만큼 슬프고 우울했고, 슬프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여기가 그토록 너가 바라던 너의 고향이자 너의 집이라고.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