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하는 세계의 그
나르시시스트는 이 불편한 정서를 감내할 수 없다 보니 자신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도록 한 상대를 향한 분노감으로 변형시켜서 토해낸다. 즉,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다루는 데 매우 서투른 나르시시스트는 많은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을 결국 분노의 형태로 내보내는 것이다.
또한 나르시시스트는 특정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점차 성숙해진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면서 뒤로 넘어가며 떼를 쓰듯이 나르시시스트도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고 상대가 움직여 주지 않으면 분노하며 난폭한 떼를 부리는 것이다. 별문제가 아닌 일로도 분노하는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과 심각한 갈등이 생기거나 본인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고의적인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Chapter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_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 中)
티끌만 한 불티만 있어도, 혹은 없는 불티를 직접 만들어내어 분노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돌멩이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특히나 새로운 물건을 얻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하면 안 됐다. 좋아하는 마음을 티 내지 말아야 했다. 물건과 같이 물질적인 게 아닌 것에도 모두 포함되는 말이었다.
커가면서 교복을 사고, 새 옷을 사고, 필요한 생필품 및 각종 새 물건(전자기기 등)을 사게 되더라도.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를 할 때에도. 새로운 것을 얻게 되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즐거운 활동을 하게 될 때도. 내가 즐겁고 좋아하는 듯한 낌새라도 새어나가면 그 행동은 처벌의 목록이 되었다. (그 행동을 제한함으로써)
“너 컴퓨터(혹은 당시에 내가 좋아하는 행동) 할 생각도 하지 마.” 혹은 나에게 특정 행동을 시키고 싶은 게 있다면 “너 이거 안 하면 종이접기(혹은 당시에 내가 좋아했던 행위) 할 생각도 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의 핸드폰을 압수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어떤 때는 종이를 활용한 종이접기나 만들기를 엄마의 눈앞에서 못 하게 했고, 어떤 때는 통금 시간이 더 빨라졌고,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인정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던졌다.
내가 노트북이 생겼을 때 엄마는 “저, 저 봐라. 저 봐. 너무 좋아한다.”, “좋아죽는다.”라고 하면서 나의 입가에 미소가 생길 때면 비아냥을 내비쳤다.
노트북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물건을 사게 될 때마다 아니꼽다는 듯 딴지를 걸었다. 없는 불티조차 만들어서 나를 걸고넘어졌고, 꼭 동생을 언급하면서 “동생도 옆에서 다 보고 있다. 너무 좋아하지 마.”, “너무 좋아하는 척한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부러워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는 명목이었다.
그런 엄마의 말에 나는 동생과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저 내가 기분이 좋은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물건이 아니라 내가 기분 좋은 경험이 있을 때도 엄마는 같은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상을 타와도 엄마는 동생 생각해서 너무 기뻐하지 말라거나, 대놓고 좋아하지 말라고 하고, 내가 즐거운 경험(여행이나 일상의 행복 등)을 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 반박 아닌 반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저 대답에 불과한 정도)으로 ‘칭찬도 안 해주고, 스스로 잘한 걸 만족하지도 못하게 하고, 동생도 물건 새로 살 때 있잖아. 등등’을 말하게 되면, 엄마는 맹렬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넌 애가 뭐가 그렇게 불평이 많니?”, “어떻게 엄마한테 한 마디도 안 진다.”, “그냥 네, 네.라고 해!”라는 말의 폭포가 쏟아진다.
‘너는 참 복에 겨웠다, 내가 지금 너에게 얼마나 많이 지원(혹은 투자)하고 있는데,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 뺑뺑이 돌리면서 공부공부하면서 달달 볶지도 않잖아, 나는 애가 학원 가는 거 싫어하면 안 보내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나를 비난하거나 내 주변을 비난하는 말로 대화가 끝이 난다. (엄마는 종종 당시에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무시하는 말을 했다.)
“엄마한테 혼나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독한 년.” 엄마가 나를 표현한 말이다.
나는 혼나지 않기 위해 집에서 웃지도 울지도 않으려 노력했다. 집에서만큼은 입을 굳게 닫고 침묵을 유지했다. 웃어도 울어도 트집 잡힐 거면, 감정을 느끼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돌이 되어 최대한 트집 잡을 수 없는 모습이어야 했다.
만약 내가 말을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5시간 안에 끝날 엄마의 퍼붓는 욕을 8시간, 9시간 들어야 했으므로 침묵을 유지하는 게 가장 빨리 끝나는 방법이었다. (그 외에는 엄마의 폭발적인 감정과 폭력이 두렵고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 라는 이유도 존재하긴 했겠지.)
폭력에 노출될 때와 폭언에 노출될 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일 때면 엄마는 비아냥거리며 비난했고, 내가 슬프거나 기분이 나쁘면 어디 엄마 앞에서 그런 표정으로 있냐며 타박을 들었다. 그렇기에 여러 방법 중 엄마가 내 모습에서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하고, 엄마의 폭발적인 분노를 뒤집어쓰는 시간을 그나마 짧게 만드는 방법이 침묵이라는 걸 평생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침묵도 기본 몇 시간씩 퍼붓는 분노를 감당해야 했지만)
어린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짓밟을 때마다 나는 침묵을 택했다. 나의 모습에 엄마는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길길이 날뛰었고, 그 행동을 자신을 향한 복수이자 저항, 반항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침묵만이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엄마가 분노할 때는 그 어떤 말도 무용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중립이든 어떤 대답이든 간에 엄마가 감정을 쏟아내는 시간을 늘릴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대답을 원하는 질문을 한들, 애초에 엄마가 어떤 답을 원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엄마는 그 모든 말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억지로 이유를 끼워 맞추어 나를 조롱하거나 비웃었고, 그러지 않다면 자신을 공격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미친년. 정신 나간 년. 이기적인 년. 이제 진짜 니 멋대로 해. 니 나이 애들은 그러고 안 살아. 온 가족이 니 눈치 보고 있어. 니 머릿속에 그거밖에 안 들었으니까 그거밖에 안 되지. 정신과 할애비를 간대도 니는 안 된다고. 이제까지 엄마가 뒷바라지 다 해줘서 니가 그렇게 살았지. 뱃속이 편하니까 그 지랄을 한다. 이제 니가 알아서 다 해. 얼마나 대단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기가 막힌다. 니 문제는 니 안에서 해결해야지. 배가 부르니까 저러지.”
엄마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이런 식으로 한 번에 쏟아내는 폭언과 감정을 두고, 엄마는 일방적인 자신의 행위를 ‘딸과 싸웠다’라고 표현하거나 ‘딸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혼냈다’로 표현했다. 나의 20대가 끝날 무렵까지.
누가 봐도 엄마의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일이더라도(엄마의 오해로 인한 일 등), 엄마는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잘못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처럼 피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엄마와 딸 관계에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에, 엄마는 나에게 숨 쉬듯 사과를 요구했을까.
엄마는 내게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입에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혼을 냈다.
만약 내가 엄마에게 억울한 부분이나 특정 부분(엄마가 명백히 잘못한 일 등)을 언급하면, ‘니가 ~한 잘못을 해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거야’라거나, 자신이 잘못한 이유는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그건 (나를 그렇게 만든) 니가 사과해야 해’라고 말할 때가 대부분이어서 나는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엄마가 만족할 만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엄마는 똑같은 말(‘내가 아니라 니가 ~한 부분을 사과해야지', ‘너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거니까.’)을 반복하거나 “너는 어떻게 단 한 번도 엄마한테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 하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나의 사과조차도 거들먹거리며 들었다.
아주 만약에 엄마가 사과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늘 그 말의 첫 어미는 “그래, 미안하다. 미안한데….”로 시작해서 “근데 니가 ~를 잘못했잖아. 니가 그래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거다. 너가 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니?”로 말이 끝났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중 하나는 “내가 왜 니한테 사과해야 해?”, “내가 왜 니한테 미안해야 해?”였다.
‘미안’, 혹은 ‘사과’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적·비언어적 표현도 존재하지만, 엄마는 그런 표현도 전혀 없었다. 오로지 ‘너’가 잘못했다고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러니 나는 엄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엄마가 퍼붓는 폭언과 감정에 침몰되지 않기 위해. 나를 위협하는 엄마의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돌멩이가 되어야 했고, 아픔도 느끼지 않는 돌멩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돌멩이는 정말로 말을 하지 못한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